유재 스페셜
유재 스페셜은 지구와사람이 기획하는 비정기 특별강연입니다
지난 강연
[제5회 유재스페셜] <슬로 라이프, 느림의 철학과 생태적 삶을 위한 공존의 길> 쓰지 신이치 교수 초청강연(11월02일)
  •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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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사람은 쓰지 신이치 교수를 초청해 ‘슬로 라이프, 느림의 철학과 생태적 삶을 위한 공존의 길’을 주제로 다섯번째 유재 스페셜을 개최했습니다.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교수는 ‘슬로우 라이프’를 처음 제창했으며 ‘행복의 경제학’을 펴내고 ‘나무늘보클럽’을 운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쓰지 교수는 강연에서 나무늘보가 보여주는 생태적 삶, 인간다운 느림의 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현대인의 삶의 단면인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크게’에서 벗어나 ‘느리고, 작고, 단순하며, 가까운(slow, small, simlpe and short)’ 삶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유재 스페셜은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통찰을 쓰지 교수님 특유의 위트와 함께 배울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연 녹취록 




강연자: 쓰지 신이치 교수(메이지가쿠잉 대학 국제학부 교수)
사회: 강금실(지구와 사람 대표)

강금실
: 오늘 유재에 모신 쓰기 신이치 선생님은 인류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자 환경운동가이십니다. 2003년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슬로우 라이프’라는 말씀을 제창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현대의 경제 시스템과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 깊은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지구와사람에 처음 오셨기 때문에 제가 소개 차 간단히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구와사람 대표 강금실입니다. 저희 지구와사람은 2015년부터 삶과 생명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같이 어울리고, 같이 공부하고,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취지에서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시작된 단체입니다. 공부 모임에만 오는 멤버도 있고요, 놀 때만 오는 멤버도 있습니다.(웃음) 오늘은 공부하다가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저희는 최근에 이슈가 되는 기후변화 등에 대해서도 공부하는데, 조금 특별하게 다루는 게 있다면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이라고 해서 새로운 생태 시대에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도 권리를 부여하는 법학을 모색하는 모임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참여해서 생명의 문제를 철학과 과학의 접근법으로 고민해보는 모임도 있습니다. 신이치 선생님을 오늘 모시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작년부터 저희가 해외의 생태학자들을 모시고 국제 컨퍼런스를 시작했는데,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넓히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교류하면서 함께 하는 걸 모색하고 있는데,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중국, 일본 쪽 전문가들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르세Marché’라고 하는, 시장에서 지은 농작물을 팔고, 팔다가 만나서 사귀고 같이 일하다가 먹고, 학교도 운영하는 생활공동체의 이고은 이사님께서 쓰기 신이치 선생님을 꼭 모시라고 추천을 해주셨어요. 올해 9월 저희가 국제 컨퍼런스 때 모시고 싶었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별도로 유재 스페셜로 모시게 됐습니다. 어제 서울연구원에서 ‘행복의 경제학’에 대해 강의하셨고 오늘은 이 유재라는 공간에서 삶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사는 방법에 대한 선생님의 깊고 울림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어제 선생님의 강연 중에서 저는 두 가지가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의 상황을 다섯 가지 전쟁으로 표현하셨었어요. 저희가 컨퍼런스 때 ‘자연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자연과의 전쟁’ ‘서로와의 전쟁’ 경쟁에 매달려 있는 ‘자기 자신과의 전쟁’ 또 ‘국가 간의 전쟁’ 등 전쟁 상황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슬로우slow, 스몰small, 심플simple에 더해 쇼트short를 말씀하시는데, 슬로우가 (우리가 큰 착각에 빠져 있는) 시간의 문제라면 쇼트는 공간의 문제인 거죠. 공간적으로 몸과 마음을 가진 존재가 터치하고 관계할 수 있는 공간을 너무 넘어선 경제를 벌여놓은 것이죠. 어떻게 보면 지금은 수습할 수 없는 파국으로 간다는 우려가 많기 때문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슬로우 라이프’라는 슬로건이 지금에서야 말로 깊이 와 닿는 시기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선 다양한 활동을 하시면서 ‘나무늘보클럽’을 이십 년째 운영하고 계십니다. ‘나무늘보클럽’은 물론, ‘천천히 학교’ 도 있는데 그런 경험들을 듣고 싶어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쓰기 신이치
: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남아도시나요?(좌중 웃음) 저는 오늘 아침부터 마르세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감동했습니다. 하나하나의 부스를 찾아 갈 때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지, 어떤 것을 하려고 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공부가 많이 됐어요. 어제 제가 말하려고 했던 ‘커다란 전환’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지금 인류는 역사상 최악이 고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여태까지 한길을 걸어 왔지만, ‘하나의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위기를 맞이한 최대의 원인은 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경제 시스템을 글로벌 경제에서 로컬 경제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자면 경제라는 것은 로컬이었습니다. 로컬 경제에서 글로벌 경제로 바뀐 것은 10년에서 20년, 길게 잡아도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그 결과입니다. 오늘 제가 마르세에서 본 것은 글로벌 경제에서 로컬 경제로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런 내용을 한 동물을 통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남미에서 활동했었는데, 벌채가 이루어지고 나무들이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산에 살고 있는 새라든지 하는 동물들이 다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는 동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무늘보였습니다. 나무늘보는 너무 느렸기 때문에 나무가 쓰러지는 동안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팔을 천천히 움직여 나무늘보 흉내) 나무늘보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좌중 폭소) 진짜 이렇게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나무가 쓰러지면 나무늘보도 같이 쓰러지게 됩니다. 처음엔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저는 ‘숲을 지키자’ ‘나무늘보를 지키자’라는 슬로건을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삼 년 후에 그 슬로건을 바꿨습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할게요. (나무늘보 사진) 제 딸입니다. 제가 이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본 나무늘보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나무늘보입니다. 이건 어때요? 한 8개월 정도 된 아이입니다. 나무늘보는 대개 7개월 될 때까지 어미와 같이 생활하는데요, 나무늘보 엄마는 한번에 한 아이밖에 낳지 못합니다. 그리고 7개월 후에는 자기 영역을 아이에게 넘기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나무늘보의 영역, 한 마리당 영역이라고 하는 것은 6~7그루의 나무 정도가 됩니다. 나무늘보는 뭘 먹고 살까요? 바로 나뭇잎만 먹고 삽니다. 세계에는 무한하게 있는 것이 있는데, 돌이라든지 모래라든지 나뭇잎 같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무 6~7그루에서 자라는 나뭇잎만 먹고 산다는 건 재미없지 않을까요? 이파리만 먹고 산다는 것은 저에너지, 저단백질만 섭취한다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잘 나오지 않게 되겠죠. 그게 나무늘보의 생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는 나무늘보가 왜 그렇게 느린지 그게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했는데요. 처음엔 나무늘보에 대한 연구가 너무 적었습니다. 70년대에 에콜로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될 때까지 나무늘보에 대해서는 연구조사 결과가 많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누군가 “당신은 무슨 연구를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나무늘보에 대해 연구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중 웃음) 나무늘보는 그 정도로 인기가 없었어요. 나무늘보라는 게 정말 안 좋은 이름이죠?(웃음) 제가 만든 이름도 아니고 나무늘보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 인간들이 붙인 이름인 거죠. 그 이름으로부터 인간이 한 동물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무늘보는 왜 그렇게 생활하게 되었을까요? 하나의 이론으로는 근육이 적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육이 적은 이유는 그들이 먹고 있는 것에 있는데, 이파리만 먹고 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기 힘든 겁니다. 그들이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음으로 인해 스피드가 느려졌지만, 대신 몸무게가 가벼워졌습니다. 고단백 고에너지의 음식들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경쟁하면서 섭취하게 됩니다. 경제학이랑 비슷한데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올라가죠? 엄청난 경쟁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송곳니를 가진다든지 손톱을 가진다든지 근육을 가진다든지 빨라진다든지 하는 경쟁력을 가지게 되면서 그 경쟁에서 이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더 많은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나무늘보는 그 경쟁에서 내려왔습니다. 몸무게가 가벼워졌죠. 그래서 아주 높은 나무에 아주 가는 나뭇가지에 붙어사는 게 가능해집니다. 이건 파나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밑에 강이 흐릅니다. 파나마 운하입니다. 맨 밑에 배를 대고 나무늘보에 대해서 아주 상세히 알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그랬더니 그 가이드 분이 “이것 보세요!” 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먼 곳이었어요. 나무늘보는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가이드 분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줬기 때문에 ‘아, 저거구나!’하며 찬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근데 줌 카메라를 배에 놓고 왔어요. 너무 실망했는데 마침 평소 달고 다니는 광각렌즈가 달린 소형카메라가 있었어요. 가까이에 있는 작은 것을 찍는 카메라였습니다. 그것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작은 점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밑에는 절벽이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이드 분한테 나무늘보를 좀 유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줄로 나뭇가지를 걸어서 당겼더니 나무늘보가 가까이 왔어요. 저는 손을 막 떨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여서 사진을 찍었지만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제대로 찍혔다고 하더라도 나무늘보의 표정이 성나거나 겁난 표정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돌아와서 현상해 보니 이렇게 웃고 있습니다. 제 친구 중 한분은 나무늘보가 숲의 보살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나무늘보에 신앙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도 나무늘보는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걸 연구해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늘보를 만나고, 나무늘보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 저는 남미나 중미 등을 찾아 갔습니다. 그래서 나무늘보에 대한 연구를 전부 끌어 모으게 됐습니다. 그러다 결국 ‘나무늘보 교수’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코스타리카에 가면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무늘보 보호센터가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늘보가 살고 있는 숲이 벌채가 되거나 전선이 들어옵니다. 나무늘보가 전선을 나뭇가지라고 여겨서 건드리면 감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가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이 나무에 올라가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됩니다. 방황전환도 힘들어서 상처를 입거나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호센터가 마련된 것이죠. 거기에 제 딸이 있습니다. 보호센터는 나무늘보를 자연 속으로 돌아가게 해주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구호된 나무늘보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희처럼 도시에 살다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힘들어지죠. 이제 나무늘보의 생태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굉장히 놀랄 만한 것들이 있는데, 바로 나무늘보가 과연 어떻게 똥을 싸느냐하는 것입니다. 그게 저한테는 수수께끼였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배설을 합니다. 자기가 안전한 곳에서 하는 거죠. 하지만 나무늘보가 배설하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한 연구자가 정글 속에 들어가 계속 관찰을 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늘보는 7일에서 8일에 한번 변을 봅니다. 신진대사가 굉장히 느린 동물인 거죠. 그리고 이빨도 뾰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화가 굉장히 힘든 편인데, 음식물이 뱃속에 들어가면 미생물들이 7, 8일 동안 소화를 시키는 거죠. 덧붙여 얘기하자면 여기 계신 여러분도 같은 작업들을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음식물을 소화시킨다고 생각하십니까? 소화는 미생물이 하는 겁니다. 뱃속에는 아무리 적어도 10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포는 37조 개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몇 배나 되는 미생물이 뱃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뱃속에는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웃음) 나무늘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늘보는 원숭이와 다르게 7~8일 걸려 소화시킨 걸 배설하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고는 나무 둥치 부근에 작은 꼬리로 구멍을 내서 거기에 배설합니다. 저도 사실 본 적은 없는데,(웃음) 그러고 나선 나뭇잎을 끌어 모아 배설물을 덮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죠. 그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리죠. 그래서 그들이 배설하는 과정에 천적이 그들을 발견했다면, 절대 도망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천적은 굉장히 빠르죠. 발견되면 끝나는 겁니다. 나무에 가만히 매달려 있다가 내려올 때만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건데, 그들의 천적인 맹수들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서 아주 민감합니다. 예를 들자면, 매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은 바로 발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선 맹인과도 같습니다. 지상의 맹수들도 비슷합니다. 나무늘보가 왜 움직이지 않는지 거기서 설명이 되는 거죠. 나무늘보는 자신의 진화 프로세스에서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을 보면서 “왜 쟤네들이 저렇게 움직이지 않지? 왜 그렇게 느리지? 게을러터진 건가?”라고 얘기하는 것이죠. 어쩌면 나무늘보는 식물과 비슷한 동물일지도 모릅니다. 동물보다 식물이 더 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다윈도 생각한 적 있습니다. 인간은 식물이 동물보다 모자란 종이라고 대개 생각해왔었습니다. 하지만 동물이 생겨나기 훨씬 이전에 식물이 먼저 생겨났죠. 만일 식물들이 광합성이라고 하는 기적적인 마술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동물은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식물은 굉장한 존재인 거죠.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도, 자기가 살기 위한 모든 것들을 얻고 있습니다. 반면에 동물은 음식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거죠. 몇 킬로미터를 하루에 달리기도 합니다. 사람도 하루에 얼마나 멀리까지 이동합니까?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여기저기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을 경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CO2를 엄청나게 내뿜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기후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식물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땅으로부터도 에너지를 얻습니다. 만약 다윈이 식물이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라고 얘기하고 다녔다면 분명히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윈은 친한 친구에게 “식물이 동물보다 진화했다.”라고 편지로 전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 중에선 나무늘보가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제가 말하는 ‘슬로우’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느린 동물이 나무 아래 내려와서 배설하는 걸까요?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하는데요. (청중 1: 냄새를 없애려고요) 죄송합니다, 틀렸습니다. (웃음) (청중 2: 거름 주려고요) 네, 맞습니다. 원숭이는 인간의 친척이죠. 그래서 제멋대로 나무 위에서 똥을 쌉니다. 아마존 같은 고온다습한 곳에서는 배설물이 떨어지는 순간, 미생물들이 몰려들기 시작해서 바로 분해해 버립니다. 그래서 땅이 하나도 변하는 게 없습니다. 아마존에 식물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땅은 극단적으로 황폐해 있습니다. 그래서 큰 식물도 작은 식물도 모두 뿌리를 옆으로 퍼뜨립니다. 굉장히 큰 나무가 몇 백 미터나 지면을 따라 뿌리를 뻗치고 있죠. 한 아마존 연구가에 의하면 그곳에 있는 어떤 식물이든 간에 그 뿌리의 깊이가 가장 깊은 게 10센티 이내라고 합니다. 나무늘보가 원숭이보다 진화했다는 것을 그걸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일부러 생명을 걸고 내려와서 배설하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깊이 구멍을 파서 식물에 영양분을 주고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무를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순환이라는 의미인 거죠. 거기 비하면 인간의 배설행위는 어떤가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옛날에는 인간이 배설한 것은 반드시 땅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도 모두 땅으로 되돌려 보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 인간은 땅이라든지 공기라든지 어떤 자연물 중 누구하고도 공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연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배설물조차도 주지 않는 거죠. 수세식 화장실에서 물로 흘려 내려서는 다들 바다로 보냅니다. 요즘 최첨단식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변기뚜껑이 자동으로 열립니다. 볼일을 보고나면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물이 저절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가면 변기뚜껑이 자동으로 닫히죠. 손을 움직이지도 않고, 자기 배설물이 어디로 어떻게 이동했는지 아무도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게 ‘불귀不歸’라는 이야기인 거죠. 근대문명의 테마 중 하나입니다. ‘불귀’가 지금 모든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인간의 근대경제라고 하는 것은 진보, 발전, 개발을 키워드로 해서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게’ ‘보다 크게’ ‘보다 빠르게’입니다. 이걸 계속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말들도 하는데요, 지금 현재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이라고들 합니다만, 자연계에 영원히 성장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어느 정도 되면 성장을 멈춥니다. 자연계의 진정한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그만 두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왠지 모르지만, 인간만이 멈추는 것을 모르는 듯이 살고 있습니다.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일본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디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문명이다. 하지만 문화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 세계에는 여러 무수한 문화들이 존재했습니다. 아마존 정글 속에도, 사하라 사막 속에도, 북극권에도 어느 곳에든 사람은 살고, 그들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문화였습니다. 어디든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문화를 만든 거죠. 그 문화라는 것은 인간이 어디에 정착하고 멈추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한계를 젖혀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글로벌화라고 하는 것은 전 세계를 하나의 문명으로 덮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각 곳에 있던 문화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문명의 소명입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문화가 중요합니다. 저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문화인류학보다 환경인류학이 더 중요하다고 여태까지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인류학에 대해서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문화인류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생태계를 부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문화라고 한다면, 문화인류학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명이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크게’를 주장한다면, 문화는 딱 필요한 정도의 양, 적당한 크기, 적당한 스피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슬로우, 스몰, 심플, 거기 더해 아까 강 선생님 말씀처럼 쇼트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S로 시작하는 가장 쉬운 단어들인 거죠. 나무늘보는 굉장히 좁은 영역, 6~7그루의 나무들로 구성된 영역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물은 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삽니다. 그리고 인간은 처음에 수렵 생활을 하다가 농업이라는 것을 발명하고 나면서부터 조그만 영역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라는 유명한 학자는 농공업 혁명이 지금 인간이 봉착한 위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의견에 완전히 찬성하진 않습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이라고 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 예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제 강연에서 저는 라다크에 대해 설명했었습니다. 라다크는 세계에서 아마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지금 보시는 건 제가 찍은 사진인데요, 제가 달나라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저쪽에 지구가 저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는 급하게 카메라를 꺼내 찍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열 명 중 한 명이 진짜 믿는 것처럼 놀라곤 합니다. (웃음) 괜찮죠?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거 달 표면 같지 않으세요? 하지만 사막입니다, 사막. 그리고 여기 보이는 건 식물입니다. 물이 거의 없어도 살 수 있는 식물이죠. 이 황폐한 땅에서 천 년 전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낸 풍경이죠. 보십시오, 아름답지 않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라마유르라는 마을입니다. 주변을 보시면 아직까지 달 표면 같죠. 여기 천 년 전에 사람이 모여들어서 호수도 만들고 숲도 만들면서 생태계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큰 집에 살면서 물질적으로도 부유합니다. 행복도도 높은 사람들이에요. 호모 사피엔스는 어디에 살든 간에 생태계를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방법이 없다고 비관적으로 여기죠.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이 삶으로 인해 식물이 살고 동물이 살고 벌레들이 들어오면서 생태계가 굉장히 풍요로워졌습니다. 사실 한국의 선조 분들도 비교적 최근까지는 생태계를 인간이 살아감으로 인해 풍요롭게 만들었었습니다. 그런 농업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아마도 유발 하라리 씨는 서양 식 농업밖에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동아시아 식 농업을 재평가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나무늘보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보시다시피 라다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표정이 상당히 행복해 보이죠. 최근 이삼 십 년 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침투해서 이들의 생활도 굉장히 위험해진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서 볼 때면 주민들의 얼굴에 행복감이 넘쳐서 그들에게 압도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 저는 ‘나무늘보를 지키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만, 이윽고 변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늘보가 되자!’로 바뀐 거죠. 나무늘보가 되는 것의 의미를 오늘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알고 보면 느린 동물입니다. 인간에게는 인간다운 속도가 있고, 인간다운 페이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시간을 효율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사랑 주고자 또는 받고자 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은 효율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퍼붓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학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충분히 사랑 받는 시간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살아가는 게 힘들어집니다. 또는 중한 장애를 받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다운 느림’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마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slow is beautifu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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