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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환경] 지구와사람 칼럼 7월호 - 침묵의 봄을 다시 읽는다 '새들은 다시 돌아올까요?' 멸종 위기종(種)에 대하여 생각한다
  •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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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을 다시 읽는다 '새들은 다시 돌아올까요?' 멸종 위기종(種)에 대하여 생각한다 

  만물과 공유해야 하는 이 세상을 무책임하게 오염시키는 인간의 행위에 가장 먼저 대항하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에서 결국 이성과 상식의 승리를 위해 수천 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인간은 미래를 예견하고 그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지구를 파괴함으로써 그 자신도 멸망할 것이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하늘의 새는 하늘의 새. 땅 위를 지나는 생명 이야기는 땅의 이야기로 그동안 나는 하늘과 땅을 겹쳐서 넓고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나라는 몸은 그것들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너무 작았다. 그런데 오늘 이 생각의 끝에 죽을 자리를 찾아 새들이 아프게 내려앉는다. 새들의 노래가 아니라 참담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의 육체가 두 다리로 거닐지 못하는 저 위쪽, 하늘의 영역에 대해서는 무심하게도 정말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던 것인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울상인 하늘. 아픈 새들. 사라진 새들이 궁금해진다. 어릴 때 새들이 날아들어 가라앉은 분위기를 북돋고 지저귀던, 그 온전하게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이 땅의 아이들에게 돌려줄 수 없는 것인가. 공유지를 오만하게 점령한 인간이 저지르는 횡포. 그것은 대체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을까. 오늘은 새들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해 나부터 스스로 생활에서 저지르고 있는 횡포와도 같은 인간의 짓을 이렇게 다시 점검해보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생명체는 ‘너’라는 종들에게 어떤 표정으로 인사를 나눠야 할까. 이제 우리는 다시 공존의 언어를 강하게 발음해야 할 때이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니? 안녕하니, 새들아?   
 
아이들에게 새들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묻곤 합니다. “새들은 다시 돌아올까요?” 하지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느릅나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고, 새들 역시 죽어갑니다. 무언가 대책이 있을까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살충제를 뿌리는 사람들은 그 약품이 ‘새에게는 무해하다’고 강조했지만 울새들은 바로 그 약품의 독성 때문에 죽어갔다. 새들은 평형감각 상실 증세를 보이더니 몸을 떨기 시작했고, 그러고는 심한 경련과 함께 죽었다.

울새들은 살충제와 직접적으로 접촉했다기보다 지렁이들을 먹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중독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강력한 농약살포기는 해충인 느릅나무딱정벌레뿐 아니라 가루받이를 돕는 곤충, 포식성 거미, 다른 딱정벌레 등 모든 곤충을 죽인다. 유독 약품은 나뭇잎과 나무껍질에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 얇은 막을 형성하는데, 빗물에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가을이 되어 땅에 떨어져 축축해진 낙엽은 아주 천천히 분해된다. 지렁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느릅나무 썩은 잎을 먹어치워 이 과정을 돕는다. 그런데 나뭇잎을 먹은 지렁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살충제까지 흡수하게 되고, 체내에 살충제가 축적되고 농축된다. 바커 박사는 지렁이의 소화관, 혈관, 신경조직, 체벽에서 DDT 성분을 발견했다. 물론 많은 지렁이가 죽었지만, 살아남은 지렁이들은 독극물의 ‘생물학적 증폭기’ 구실을 했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이런 순환 경로의 한 고리를 연결할 울새들이 날아온다. 지렁이 11마리면 울새에게 치명적인 DDT를 공급하기에 충분하다. 1분에 한 마리씩 지렁이를 먹어치우는 새들에게 11마리는 별로 대단치 않은 양이다. - 레이첼 카슨의『침묵의 봄』중에서 
 
 『침묵의 봄』을 다시 읽는다. 먹이 사슬, 자연의 순환, 존재와 소멸, 생(生)과 사(死). 이런 단어들이 무겁게 지나간다. 연쇄적인 죽음, 죽음의 순환. 새가 죽은 건 농약이 묻은 느릅나무 껍질을 맛있게 먹는 지렁이의 몸에 축적된 농약 때문이라는 사실. 자연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인간은 마치 그 영향권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듯이 모르는 척 수많은 곳을 오염시키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당장 공기가 없으면 죽을, 당장 먹을 물이 없어도 죽을, 당장 곡식들이 다 오염되어 먹을 것이 없으면 배고파 죽을, 어떻게든 죽고야 말 인간들이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나는 오늘 울새의 죽음을 읽다가 깊이 반성한다. 나는 내가 모르는 자연의 동식물의 생명에 대해 얼마나 우려의 목소리를 냈었나. 어쩔 수 없다며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버리면서도, 비닐에 음식을 자주 담아오면서도 정말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나는 얼마나 그들의 통증을 짐작하고 공감하고 있었나. 그런 마음으로 내가 들었던 멸종 위기종들을 하나씩 호명해본다. 어떤 위기를 겪더라도 결국에는 사라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늑대, 담비, 대륙사슴, 붉은 박쥐, 사향노루, 스라소니, 독수리, 뿔쇠오리, 재두루미, 큰기러기, 팔색조, 호랑이, 토끼박쥐, 구렁이, 흑기러기, 표범, 여우, 고니, 산양, 수리부엉이, 금개구리, 크낙새, 비단벌레, 한강납줄개, 버들가지, 물방개, 가시고기, 칠성장어, 상제나비, 열목어, 연준모치, 임실납자루, 수염풍뎅이, 물거미, 소똥구리, 물장군, 흰발농게, 깃산호, 나팔고둥, 금자란, 조름나물, 가시연, 제비붓꽃, 만년콩, 무주나무, 죽절초, 백운란, 으름난초, 화경버섯, 물고사리, 크낙새.
이렇게나 많은 동식물이 사라질 거라는 위기. 이것은 또다시 어떤 먹이 사슬을 파괴하고 자연에 어떤 악순환을 초래하게 될 것인가. 생명과 공존에 대해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서도 나의 공부는 그저 책상 위에서만 요란했었나. 나의 어떤 실천이 아이들에게 아프지 않은 새들의 건강한 소리를 다시 되돌려줄 수 있을까. 인간인 나의 시야는 그동안 너무 좁았다. 눈앞에 보이는 환경. 그 속에 있는 것들만 아우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 쉬고 있는 동식물의 생태환경에 대해서는 가늠하지 못했다. 숨 쉬는 생명체에게 호흡을 나눠주는 곁에 대해, 환경에 대해 무지했다고 자각한다. 아프게 그 숨을 이어가고 있는 생명. 언제 멈출지 모르게 헐떡이는 몸들, 다친 동물들과 꺾여져 썩어가는 식물들. 오늘, 내 속으로 그들의 숨소리가 거칠게 흡흡, 자꾸 들어온다. 아프다. 


지구의 날을 기념하다- 연극_ ‘기억하는 새, 작은 진혼’ (While Remembering)

4월 22일 ‘지구의 날’. 그날은 기억하면서도 그 유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냥 그날이 지구의 날이라고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침묵의 봄』을 다시 읽으면서 그 하루에 관심이 다 집중되었다.지구의 날은『침묵의 봄』을 읽은 한 상원의원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자연보호 전국 순례를 건의하여 이를 계기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마음이 향하는 쪽에서는 이렇게 무지의 백지에 힌트 같은 정보를 알차게 적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022년 지구와사람 창작극 프로젝트 ‘기억하는 새, 작은 진혼 While Remembering’ (극:임호경, 연출:강영덕)이 4월 16일부터 4월 23일까지 무대에 올려졌다.  

 ‘우리의 기억은 새가 되어 날아갔다. 이번 봄에는 그 새를 만날 수 있을까’
 기억하는 새, 작은 진혼은 대멸종을 다루고 있으며 기후 위기와 재난으로 사라져가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그들이 살아있었던 어떤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번 연극을 통해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나버린 존재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사이, 그들은 이미 사라졌음을 인식한다. 나아가, 그럼에도 우리 주변으로 피어나는 4월의 봄을 다시 인식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 바로 지구다. 2022년 지구의 날을 맞아 함께 기억하고, 함께 노래한다. - 연극 「기억하는 새, 작은 진혼」기획 의도 중에서. 
 
내가 연극에서 주목했던 것은 A.E.A(Association of Extinct Animals)이었다. 배우들과 기획자가 만들어 낸 멸종동물협회. 멸종된 동물들이 회원이 되어서 그들끼리 협회를 만들었다면 정말 그들은 모여서 인간에 대해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연극은 얼마 전 멸종 된 ‘북부사각입술흰코뿔소’가 커피를 내리면서 자신들에 관한 모든 기억을 천천히 가라앉힌다는 상징을 품은 채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커피를 조심스레 인간에게 권한다.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한잔의 커피. 관객들은 멸종 동물들의 몸에 흔적을 남긴 기억을 마신다. ‘북부사각입술흰코뿔소’, 그의 마지막 순간을 뒤로 한 채 서글프게 노래가 들려온다. ‘Try to Remember’. 봄을 기다리는 새들은 다시 한번 힘찬 날갯짓을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5인의 유재요정 중창단은 4월의 가을을 노래한다. 봄인데 가을인 듯 지고 있는 듯. 그리고 9월의 시간은 빠르게 12월로 달려가고 그들의 노래 끝에 ‘솔송나무’가 북을 치며 등장한다. 솔송나무는 떠나보내야 할 ‘북부사각입술흰코뿔소’에게 따뜻한 작별인사를 준비하고 있고 관객들과 함께 멸종된 종들을 기리고자 힘차게 축언을 시작하려고 한다, 둥둥, 북을 친다. 그리고 곧 멸종하게 될 위기를 맞은 동식물들. 그 이름이 적힌 색종이를 관객들에게 하나씩 뽑게 하여 인간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발음하게 한다. 잊지 말자고. 한편에선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위로하기 위해 빵을 구워 온 ‘크낙새’가 오늘도 인간들 앞에 앉아 빵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결국 ‘북부사각입술흰코뿔소’는 인간 앞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절이 온다면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자연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나는 연극에 등장한 가상의 ‘멸종동물협회’. 그 협회의 이름 자체가 이 땅에서 영원히 지워지기를 바란다. 지켜져야 할 수많은 생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의 역할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인간에 의해서 무참히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위기로 인식한다면 지금부터 그 생명의 호흡을 위해 수많은 곳에서 구체적인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 지금이 바로 지구의 위기다. 우리는 상생하며 호흡해야 숨통이 트이는 존재들이다.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자. 너무 늦지 않게. 나를 비롯하여 이 땅의 주인인 듯 무심코 많은 짓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인간이. 이제는 모른 척 눈 감으면 안 되는 때이다. 


한쪽 날개를 두고 간 새가 걱정이다

새의 울음은 어느 쪽에서 들려오는가

날갯죽지, 그 뿌리는 이제 전천후 비행을 체념한 모양이다
 
발가락마저 잘린 새가 큰길을 건너 걸어가고 있다

- 황혜경의 시 ‘날개는 어디다 두고 왔니 이제 다 왔는데’ 중에서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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