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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얼음대륙 '남극'을 이야기하다 - 황혜경
  •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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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시(詩) 속에 ‘미지’의,
‘상상’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대륙

‘남극’. 남위 60˚ 이남의 남극해와 섬을 포함하는 지역. 나는 아직도 상상 속에 두고 있는 대륙이다. 시를 쓸 때 그 속에 등장하는 남극은 대부분 빙하로 둘러싸여 사방이 온통 하얗다. 내가 창작하는 시에서 남극은 늘 색채와 온도로만 펼쳐진다. 이처럼 나에게 남극은 더러워진 것들, 오염된 의식을 깨끗하게 소독하고 싶어지는 때, 또는 무의식적으로 아껴두고 싶은 것을 묻어두고자 하는 아주 사적이고 시(詩)적인 대륙이다. 남극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그곳은 언제나 상징으로 소모되는 곳이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문제를 주지시키는 목소리들. 물론 그럴 때마다 때로 덩달아 위기의식을 잠시 느끼기도 한다. 북극도 마찬가지. 정작 구체적인 실천을 구호로 내걸고 능동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것은 거리상 너무 동떨어진 먼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극지를 이야기할 때면 먼저 북극엔 북극곰. 남극엔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펭귄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도 했다. 내가 유난히 펭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야생 동물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때 본 펭귄은 한창 돌멩이를 품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렇게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다. 놀라웠다. 생명을 쉽게 포기하고 버리기 일쑤인 인간들과 겹쳐 보였고, 인간의 사고력이 동물보다 한참 우위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생각이 순식간에 지워지고 있었다. 버려지는 이땅의 수많은 아기들. 그런데 펭귄들은 미리 알을 품는 연습까지 한다니! 그 혹한의 기후에서 그것을 계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펭귄이 사는 남극이 더 궁금해졌고 나는 조금 더 남극 쪽으로 닿고 있었다. 평균 얼음 두께 2160m. 지구 전체 육지의 약 10%에 달하지만,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곳. 이제 나에게는 시각을 달리해서 굳게 걸어둔 상상의 빗장을 풀고 남극의 삶을 현실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자각에서 시작된 의욕으로 나는 자주 남극으로 출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남극세종과학기지에 머물다 돌아온
‘사회과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지구와사람 생명문화강화-‘남극사회학과 극지심상의 재구성’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인류세연구센터에서 일하며 인간 너머의 지리학, 행성적 도시화 등 국가와 자연의 관계성에 집중하고 있는 김준수 연구원이 준비한 강의였다. 그는 2022년 남극세종과학기지 하계연구대원으로 참여해서 극지 인문사회과학 현장 연구를 진행했으며 남극과학위원회(SCAR) 인문사회분과 최초의 한국인 회원으로 등재되었다. 그날의 강연에서는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인류학적 방법을 통해 현장 연구를 수행한 사회학자의 경험을 자세히 들었고 극지 공간에 대한 사회적, 지리적 ‘심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극지 공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기존의 낭만적-자원적 접근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대안적 상상력을 제시하기도 했다. 강의를 듣는 동안 인간은 왜 남극에 연구기지를 두었을까? 나는 초보의 걸음으로 어설프게 남극에 첫걸음을 내딛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는 마음으로, ‘왜’라는 그 하나의 의문에 계속 물음표를 찍고 있었다. 사우스셰틀랜드 제도의 킹조지섬에 우리는 왜 연구를 목적으로 세종과학기지를 세웠을까? 완벽하게 자연 상태인 그곳을 왜 굳이 연구하려는 것일까? 연구원들은 남극의 대기 관측, 지질과 자원연구, 생태계 연구를 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다. 해저지형 및 지층탐사, 암석 표본 채취, 육상 동식물 분포조사, 해양 생물연구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걸 알게 되었으면서도 의문은 멈추지 않았다. 지구는 더워지고 있고,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프레온가스 등)는 인간에 의해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1940년대부터 10년마다 지구 온도는 0.5℃씩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소가 내뿜는 방귀나 트림으로 만들어지는 메탄은 인간이 만드는 온실가스보다 80배나 더 심하다고는 한다) 남극의 얼음은 전 세계 얼음의 90%나 되고, 그 얼음들이 녹아내리게 된다면 해수면의 높이가 얼마나 높아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처럼 위기에 직면한 인간은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삭막한 얼음대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삶에 이롭고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김준수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50년 동안 극지는 ‘미지의 땅’에서 과학 기술을 통한 ‘정복 대상’으로, 이어 미소 냉전의 ‘전략적 대치지역’에서 ‘인류 공동의 땅’으로 이해되고 상상됐으며, 국내에서는 1970년대 ‘자원의 보고’로 극지에 관한 관심이 촉발됐고 ‘선진국 진입의 증거’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그곳에 사는 생명체의 일상을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수긍할 수 있는 연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극의추위를 이겨내며 생존해온 동물들이 바로 그곳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남극에도 여름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남극은 1월 2월 3월이 여름이라고 한다. 여름 기온은 -5℃ 정도. 남극의 최저기온 기록은 -89.2℃. 평균기온은 -35℃. 남극권 내부에 있는 유일한 무인 대륙. 크기는 대략 1300만㎢. 한반도의 62배. 표면의 98%가 빙하로 덮여있는 곳. 남극 대륙의 해안 상당 부분은 지구가 더워지면서 얼음이 깨져나가 남극 대륙을 포함한 육지와 섬의 정확한 해안선과 면적을 알기 어렵다고 한다. 남극 탐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크루즈는 계속된다. 나는 참 어리석었다. 이토록 오래 남극을 그야말로 ‘낭만적’으로 상상의 공간으로만 여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김준수 연구원에 의하면 그곳도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이 활발하게 지속되는 곳이라고 한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굳어서 육지의 일부인 빙하를 차츰 이루었듯이. 남극의 ‘매일’ 속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한다. 특히 얼음이 녹고 땅이 다 드러난 남극의 사진을 볼 때는 참 생소했다. 남극은 그저 하얀 빙하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땅에는 식물의 연두와 초록이 드러나기도 하며 지의류도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 대륙의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인간에게 허용된 가장 비인간적인 환경을 경험하고자 하는가? 그곳은 실로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상만 해도 무서워서 혼이 나갈 것 같은, 그런 음산하고 적막한 공간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황량하고, 가장 바람이 많고, 가장 추운 곳” 이것이 남극 대륙에 대한 모든 글에 마치 공식처럼 등장하는 표현이다. 1880년 이전까지는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대륙이었다. 그리고 1898년까지는 누구도 1년 이상 머문 적이 없는 대륙이었다.

남극의 온전한 실체. 아마도 그 비밀은 쉽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밝혀진 것이 전부는 아니고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무수히 많이 빙하 속에 묻혀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준수 연구원이 전해준 그곳의 현실에 귀를 기울이게 됐는데, 특히 펭귄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다. 남극에서는 펭귄들도 상상 속의 동물이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냄새도 심하게 나고, 해표는 펭귄을 잡아먹는데 사냥법이 참 잔인하다. 해표는  펭귄을 바위에 세게 내리쳐서 가죽을 한 번에 벗겨 먹는다는 것. 김준수 연구원은 여기저기 날마다 펭귄의 사체가 널려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새끼를 잃은 펭귄에게는 수많은 펭귄이 돌멩이를 하나씩 주워다 전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돌멩이는 잃어버리고 난 빈자리에 대한 위로였을까, 아니면 어서 지체 말고 다시 엄마 아빠 연습을 시작하라는 그들 방식의 파이팅이자 격려였을까. 어떤 펭귄들은 연구원이 채워준 활동 인식기를 몸에 달고 먹이활동을 하러 나간다. 연구원들은 그런 펭귄들이 남극의 어느 지점까지 가서 먹이활동을 하는지 기록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일상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그곳은 분명 이제 더 이상 ‘미지’의 대륙은 아닌 듯했다.

북극에는 ‘날고기를 먹는 인간’이라는 에스키모가 산다. 그들은 그러나 자신들을 ‘인간’이라는 뜻의 ‘이누이트’로 부른다. 남극은 어떤가? 남극은 무인 대륙이다. 남극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연구를 위해 각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각국에서 남극에 와 연구기지를 만든 연구원들은 머무는 동안 하나의 ‘사회’를 이룬 듯이 함께 더불어 생활한다고. 그가 들려주는 생생한 남극 이야기는 이렇게 상상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평균기온이 -35℃라니! 우리의 체온으로는 실감할 수 없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남극은 왜 그렇게 추운 걸까? 북극보다도 남극이 더 춥다는 데 그 이유는? 북극은 대부분 바다로 이루어져 있어서 열이 잘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남극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서 태양에너지의 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반사한다. 또한 남극은 세계에서 가장 차가운 해류인 남극 순환류에 둘러싸여서 기온이 더 낮다. 사하라 사막보다도 강수량이 적은 거대한 얼음사막. 남극. 대부분 눈이 내리고 비는 내리지 않는 곳. 특히 남극의드라이 밸리는 최소 이백만 년 동안 비나 눈이 내리지 않고 그나마 있던 눈도 태양 빛에 증발하거나 강한 바람에 쓸려 암석과 토양이그대로 드러나는 지형으로 유명하다. 그곳은 남극에서 얼음이 없는 가장 넓은 곳이라고 한다. 하나씩 성실하게 문제를 풀 듯이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대륙의 비밀을 서서히 드러내게 될 남극. 앞으로 우리는 남극을 어디까지 궁금해해야 할 것인가. 어디까지 연구하고 파헤쳐야 할 것인가. 남극만이라도 남아있는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둬야 할 것인가.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노르웨이 출신의 탐험가, 아문센은 1911년 12월 14일 수많은 위험을 극복하고 세계 최초로 남극점을 밟았다. 개썰매를 타고 남극점을 향해 출발한 지 55일 만이었다. 그 이후로도 탐험가들에 의해 탐험은 계속되었고 현재도 남극 대륙에는 많은 탐험가가 연구를 목적으로 모여들고 있다. 탐험과 정복은 인간의 DNA에 굳게 박혀있는 욕망인가? 지금 북극에서는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그리고 강대국들의 개발 전쟁이 치열하다. 그곳에 묻힌 천연자원이 그들을 멈출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남극은 ‘남극조약’에 의해 조금은 안전하다. 이 조약은 1959년 미국, 영국, 소련 등 12개국이 모여 체결하였고, 남극의 평화적 이용, 과학적 조사와 교류, 영유권 주장의 금지, 남극에서의 핵실험 및 핵폐기물 처리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86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했다. (남극의 영유권 주장은 1908년 영국을 시작으로 1940년대까지 여러 나라에 의해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먼저 발견했다는 이유로 영유권을 주장하곤 했다.)

이 조약의 유효기간은 2041년이다. 2041년까지 세계 어느 나라도 그곳을 개발할 수 없도록 강력하게 막고 있다. 남극이 아직 보호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언제까지 이 남극조약을 평화롭게 지키고 있을지는 믿을 수 없다. 남극의 빙하가 모두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 남태평양 ‘투발루’는 2060년경 지도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남극을 지키고 지구를 살리는 일. 결코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극지, 남극이 오늘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며 차갑고도 하얗고도 그러나 생동감 있게 눈 앞에 펼쳐진다. 탐험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로버트 스원에 의해 시작된 2041 프로젝트! 우리도 이제는 한 번쯤 그 해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예측하고 지구와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긴밀하게 도모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극에 대해 더 이해하고 보전하며 우리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들을 조심스레 실행해야 할 것이다. 심각한 기후변화, 그리고 펭귄의 주요 먹이인 크릴을 싹 쓸어가려는 인간의 조업 활동. 남극의 먹이사슬이 깨지면 자연스레 생물의 개체수는 감소하게 될 것이다. 남극의 물개 역시 크릴이나 물고기, 오징어 등 비교적 작은 해양 생물을 먹고 사는데 인간의 끝없는 조업은 이들의 개체수를 줄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을 살펴보면 남극은 이미 위험에 처해있다. 다수의 펭귄과 물개, 고래 등 남극에 사는 생물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남극의 슬픈 현실이자 자명한 사실이다. 이제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우리는 골몰해야 할 것이다. 의문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간환경] 9월호 "지구와사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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