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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법] 고래, 헌법소원을 청구하다(법률신문 칼럼 2023/09/22)
  •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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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우리 정부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도와 관련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해야 했을 외교적 조치 등을 다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우리 국민과 생명체들이 헌법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대한민국 대통령과 관계부처를 대상으로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이 헌법소원의 청구인단에는 해녀와 어업인을 포함한 4만 명이 넘는 국민들과 함께 고래 164개체가 포함됐다. 변호인은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류는 수많은 바다 생물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할 텐데, 우리는 인간의 먹거리로서 수산물의 안전 문제만 이야기하고 있다”며 “‘세슘 우럭’에서 보듯 해양 생태계의 피해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동물들이 받을 고통과 피해를 대표하기 위해 고래를 청구인단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민사· 행정 소송에서 비인간 동물을 주체로 한 소송은 몇 차례 있었지만 모두 ‘원고 적격 없다’며 기각됐다. 2003년 경남 양산시 천성산 터널공사가 천성산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소송의 원고에는 도롱뇽이 포함됐는데 법원은 "도롱뇽은 재판을 청구할 법률적인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고, 이후 2007년 충주환경운동연합 등이 폐갱도와 습지에 사는 ‘황금박쥐’등 동물 7종과 함께 충주시장을 상대로 낸 도로 공사결정처분 무효 행정소송과 2008년 어민들이‘검은머리물떼새’와 함께 군산 복합화력발전소 공사계획인가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 2018년 설악산에 서식하는 산양 28마리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막으려고 제기한 행정소송에 원고로 이름을 올렸지만 모두 동물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원고적격이 부인됐다.

비인간 동물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는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왔다. 자연의 권리를 헌법· 법률·조례 형식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법부 판례를 통해 자연의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동물원에 갇혀 있던 오랑우탄 ‘샌드라’, 침팬지 ‘세실리아’가 스스로를 풀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들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하고 청구를 받아들였다. 2016년 콜롬비아 아트라토강, 2018년 인도 갠지스강 및 야무나강, 2019년 방글라데시 투라그강 등의 법적 권리를 각국 법원이 인정했다. 2017년 뉴질랜드 의회는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테 아와 투푸아법(Te Awa Tupua Act)’을 제정해 뉴질랜드 북섬 황거누이강에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책임을 주었고, 대리인을 통해 강을 오염시키는 주체를 상대로 소송 등 권리 행사가 가능하게 했다.

헌법소원심판은 침해된 기본권의 구제를 위하여 청구하는 것이므로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능력 즉, 기본권 향유능력이 있으면 누구든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기본권 향유능력만 있으면 헌법 소원을 청구할 수 있고, 기본권행사능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아닌 외국인, 자연인이 아닌 법인과 법인이 아닌 사단에게도 그들이 가진 권리를 일부 인정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청구인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기업은 인간과 같은 몸이 없어 신체의 자유를 주장할 수는 없지만 재산에 대한 권리는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고래에게도 고래가 가진 권리를 인정할 수는 없는 걸까?

고래에게는 고래의 권리가 있다. 깨끗한 바다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 자유롭게 넓은 바다를 헤엄칠 권리, 다른 고래와 고래의 노래를 부르며 소통할 권리, 인간에게 함부로 포획되어 죽거나 인간에 의해 멸종되지 않을 권리, … 이는 인간의 기본권과는 다르다. 고래는 고래가 가진 기본권의 주체로서 기본권을 향유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으로 고래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에서 고래는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사법체계 안에서 비인간동물은 그 고유의 권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같은 바다를 공유하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우리가 고래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인 법 체계를 뛰어 넘는 전환이 필요하다.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생물다양성의 중요도가 그 어느때 보다 높아진 지금이야 말로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판결을 해야 할 때이다. 청구인 고래에게 고래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권리를 인정하고, 생태법인 제도 및 대리인 제도 등 방법을 통해 그 권리 행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여 인간을 포함한 ‘지구공동체의 건강과 안녕’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야 한다.



법률신문 2023/09/22 칼럼 [지구를 위한 법] 

“고래, 헌법소원을 청구하다” - 김보미(사단법인 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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