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 순이익 제도는 단순한 규제정책이 아니라
야생동물이 번성할 수 있도록 기존 서식지를 개선-조성하는 변혁적인 접근 방식이다
영국 정부는 2019년 성명을 통해 생물다양성에 대한 순이익 제도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생물다양성 순이익(BNG, Biodiversity net gain)은 자연서식지를 조성하고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쉽게 말해 개발자가 개발사업을 할 때 그 지역의 이전 생물다양성 가치와 비교하여 생물다양성 가치를 10% 증가시키도록 요구한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개최할 당시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이러한 정책 기조가 국토개발에도 반영되었다.
2021년 영국 환경법이 개정됨에 따라 도시 및 국가계획법은 2024년 2월 12일부터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대규모 개발계획 허가 시 최소 10%의 생물다양성 순이익을 발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2024년 4월 2일부터는 소규모 개발계획 허가 시에도 이러한 요건이 적용된다. 개발사업을 할 때는 생물다양성 확보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을 요구하는 영국의 이러한 행보는 개발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비수도권에 위치한 그린벨트를 대거 해제하겠다는 우리 정부와 대비된다.
영국이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2019년에 발표된 ‘자연 상태 보고서’가 있다. 영국에는 이미 생물 다양성과 야생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과 정책이 있음에도 포유류의 1/4과 식물의 1/5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영국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낮은 하위 10개의 나라 중 하나이다. 정부는 기존의 법률이 보호구역 등 일부 특정 지역과 멸종위기종만 보호하고, 그 외의 서식지는 개발행위로 무분별하게 손실되어 자연의 번성력이 감소되는데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에 야생동물 서식지의 가치를 평가·유지·개선·조성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고안하게 되었다.
법이 시행됨에 따라 부동산 개발자는 개발 현장에서 생물다양성을 개선하여 서식지를 조성하거나, 개발 현장 내에서 10%를 모두 달성할 수 없는 경우 개발 현장 외 지역에서 생물다양성을 개선하거나 생물다양성 거래시장에서 이에 대한 단위(unit)를 구매하여 목표를 달성하여야 한다. 토지소유자, 농부 등 토지관리자는 생물다양성 거래시장에 생물다양성 단위를 판매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최후수단으로 정부로부터 법정 생물다양성 크레딧을 구매해야 한다. 토지 소유자는 서식지를 조성하거나 개선하고 목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최소 30년 동안 해당 서식지를 관리할 법적 책임이 있다. 현장 외 지역에서 생물다양성 단위를 구입하는 경우 목표 달성을 위해 30년 동안 해당 토지 관리자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개발자는 토지 개발계획 인허가 단계에서 규제당국에 생물다양성 확보 계획과 입증방안을 제출하고 승인받아야 한다. 규제당국은 절차적으로 개발이 시작되기 이전에 생물다양성 확보 계획을 승인해야 한다.
생물다양성 순이익 제도는 단순한 규제정책이 아니라, 개발을 계기로 야생동물이 번성할 수 있도록 기존 서식지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서식지를 조성하도록 하는 적극적이고 변혁적 접근 방식이다. 이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생물다양성을 측정하는 표준화된 방법이 중요하다. ‘생물다양성 단위’는 서식지의 크기, 위치, 유형, 질 등의 요소를 고려한 생물 다양성 가치의 정량화된 척도를 전제로 한다. 개발자와 토지 관리자는 생태학자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해당 지역의 생물다양성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서식지 조성 또는 개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생물다양성 순이익이 투명하게 장기적으로 관리되고, 모니터링될 수 있는 표준 또한 제시되어야 한다.
생물다양성 단위 거래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영국에서는 생물다양성 발자국의 상쇄와 직접적인 수익을 연계하는 펀드도 출시되고 있다. 한편, 2022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자연과 그 관리인에게 측정 가능한 보상 및 새로운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하는 생물다양성 크레딧의 잠재력을 탐구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2023년 자연 회복에 대한 기업의 기여를 지원하기 위해 생물다양성 크레딧 로드맵을 시작했다. 유럽의회는 작년 7월 ‘2030년까지 EU 육지와 바다의 최소 30%를 복원하고 2050년까지 복원이 필요한 모든 생태계를 복구’할 것을 핵심 목표로 하는 자연복원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러한 글로벌 움직임은 자연자본 회복을 위한 거버넌스와 메커니즘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고, 생물 다양성 개선을 보장하기 위한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며, 토착민과 지역 사회에 대한 소득의 공정한 분배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법률신문 2024/03/31 칼럼 [지구를 위한 법]
“영국에서는 부동산을 개발하려면 자연서식지를 조성해야 한다” - 지현영(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지구법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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