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 스페셜
유재 스페셜은 지구와사람이 기획하는 비정기 특별강연입니다
지난 강연
[제2회 유재스페셜] 'Buen Vivir: Good Living' - 알만도 안토니오 데 네그리 박사 초청 강연 (2월 26일)
  • 2019-03-28
  • 320


지구와사람 두 번째 유재스페셜이 2월 26일 오후 7시에 열렸다. 브라질 출신의  알만도 안토니오 데 네그리 (Armando Antonio De Negri Filho) 의학박사는 이날 에콰도르 헌법 등을 이룰 수 있었던 남미 고유의 세계관이자 최상의 핵심 가치, Buen vivir(Sumak Kawsay; the Good way of Living)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강연은 부엔 비비르가 어떻게 생산과 소비에 적용되며 민주주의로서 사회적, 환경적 정의(justice)가 어떻게 지속발전가능성을 이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통역은 아리랑TV의 김고은 회원이 맡았다. 


Armando Antonio De Negri Filho

브라질 출신 의학 박사 알만도 안토니오 데 네그리는 지난 17년간 공공 보건 및 인권 분야에서 국제적 경험을 쌓아 온 공공 보건 전문가다. 브라질과 이탈리아 국적을 모두 가진 그는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쓰며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브라질에서 공공 보건 석사,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캐나다, 스웨덴,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의학 인턴 과정과 공공보건 관련 훈련을 받았다. 2002년 이래 10년 동안 쿠바의 하바나 대학을 시작으로 미국의 버클리 대학, 멕시코 구아달라하라, 보고타 소재 콜롬비아 국립대학, 베네수엘라, 인도, 한국 소재 5개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강좌를 가르쳤고, 삶의 질과 건강에 대한 인권 접근법 등 그의 공공보건 관련 간행물 다수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멕시코, 브라질 등에서 출간되었다. 학술지 건강과 인권(Health and Human Rights)의 2008년 1월호에 실린 박사의 글을 확인하려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된다. 

- (pdf 파일) https://cdn2.sph.harvard.edu/wp-content/uploads/sites/125/2013/07/8-Filho.pdf 
- (학술지 링크) https://www.hhrjournal.org/2013/09/a-human-rights-approach-to-quality-of-life-and-health-applications-to-public-health-programming-2/

국제 보건 평등 협회(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Equity in Health) 대표를 역임했던 네그리 박사는 현재 국민 건강 운동 협회(People’s Health Movement)의 회원이며, 세계 보건 사회 포럼 (World Social Forum on Health)의 집행위원회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특별 강연을 이끌었던 바 있다. 

참고 내용

에콰도르 헌법은 헌법 전문(前文)에서 자연의 다양성과 자연과 조화 속에서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양식의 공존질서를 정립함으로써 ‘(원주민 언어로는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 곧 좋은 삶의 방식(the good way of living)을 성취하고자 하는 에콰도르 국민의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에콰도르 헌법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자연의 권리를 명문으로 인정하였다는 데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자연의 보호, 자연의 권리 인정, 그리고 자연과 조화하는 삶을 인간의 좋은 삶의 방식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과 조화하는 삶이 당위명제가 아니라 그냥 그것이 좋은 삶의 방식이라는, 선조들로부터 전승되어 온,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생태위기 시대에 이르러 더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인생관 내지 세계관을 에콰도르 헌법은 담대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수막 카우사이는 원주민의 세계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공동체적 체계로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생의 가치를 중시한다. 이러한 원주민 철학은 사람과 동식물 그리고 무생물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가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우주적 윤리’의 관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근대성이 갖는 ‘인본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철학이다. 한편 수막 카우사이가 서구의 경제성장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강연 영상 및 녹취록


진행 및 통역 : 김고은(아리랑TV 방송 번역가)

강금실: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두 번째 유재 스페셜 강사님을 모셨어요. 저희 멤버이시기도 한 UN 사회개발연구소의 이일청 박사님께서 마침 서울 쪽으로 모시고 왔기에 저희가 특강을 요청했습니다. 브라질에서 오신 알만도 안토니오 데 네그리 필호 박사님이십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룰라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서 사회운동을 함께 해 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정치에 직접 발을 담그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조금 부러운 게 한국에서도 전통사상을 현대화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어 오려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게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데 비해서, 남미는 원주민들의 삶의 철학과 세계관, 자연에 대한 사상 같은 게 지금 사회운동의 밑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 지구와사람에서 다루고 있는 지구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UN을 중심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남미 분들이세요. 에콰도르는 헌법에 지구법 원리가 반영됐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삶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거죠. 네그리 박사님은 의학박사로서 여러 광범위한 사회정책과 관련한 운동을 많이 하신 분인데, 오늘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시게 되겠지만 아마도 원주민의 자연에 대한 철학을 중심으로 말씀을 해주실 것 같습니다. 
김고은 선생님이 오늘 전 앵커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통역과 사회를 동시에 맡아주시겠습니다. (일동 웃음, 박수)

김고은: 네 반갑습니다. 알만도 데 네그리 박사님은 멀리 브라질에서 오셨습니다. 저도 아직 남미에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주 먼 곳이죠.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했는데, 자연환경과 사회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사회 운동들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우선 선생님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네그리: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여러분과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강연보다는 다이얼로그 형태로 중간에 궁금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같이 참여해주시고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이름은 알만도 안토니오 데 네그리 필호이고, 의학박사입니다. 남 브라질에서 왔고, 지금은 사회 보장 및 국민들의 건강을 보장하는 인권에 관한 운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는 ‘개발’이라는 것인데, 과연 어떤 컨셉의 개발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에서 개발이라는 문제는 전통적으로 다른 나라의 부를 위해, 약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억압적으로 진행된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불평등의 역사가 있는데, 식민지배 등에 의해 모든 사람의 부와 존엄성을 나눠 갖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역사였습니다. 여기서 주변부라는 개념이 중요한데요, 개발이라는 컨셉이 대개 어떤 권력을 가진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형태로 되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나중에는 주변부에서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지고 어떻게 다시 중심부로 옮겨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이 과정에서는 주변부가 중심부의 부를 위해서 계속 기여를 하며 힘들게 일하고 있는 그런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운동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은 과정은 이런 구도를 약간 바꾸는, 주변부가 중심부에 종속되어 있는 구도를 바꾸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다시 찾는 데 있어서는 오래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컨셉을 토대로 시작했습니다. “잘 산다”는 개념을 역사를 통해, 과거를 통해 보는 것인데, ‘live better’ 즉, 더 잘 산다는 개념보다는 ‘live well’ 즉, 평범하고 단순하게 잘 사는 거지 경쟁적으로 보다 잘 살자, 라는 비교적 개념이 아닌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먼저 존엄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계속 더 뭔가를 바라게 되는, 즉 현대 생활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산다는 개념입니다. 또 자주 나오는 개념 하나가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happiness’라는 개념과는 다르게 어떤 기본적인 것들을 소유하거나 누리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그 자체의 즐거움을 찾아가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이런 걸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이 컨셉은 안데스 산맥 지역의 고대 문화에서 온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실제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모든 것이 하모니를 이루고 어떤 평형(equilibrium)을 유지해나가자는 컨셉입니다. 자연과 사람이 평형을 이루면서 뭔가를 더 원하지 않고, 더 파괴하지 않고 평형을 지켜나가자는 것이지요. 이것은 더 이상 인간중심적인 컨셉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생명체와 하나가 됨으로써 생명이라는 개념도 더 넓게 보는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motherland’라고 하고 남미 쪽에서는 ‘파추마마(pachumama)라고 하는데, 우리가 모두 거기에 속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런 컨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컨셉은 자연과의 관계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조금 생뚱맞게 여겨질 수도 있는데, 에콰도르 헌법에도 이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 하필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의 헌법에 이게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됐냐하면, 이 두 국가는 인구의 대부분이 토착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철학이 보다 친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바탕이 될 수 있는 토대가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페루와 에콰도르에서는 ‘sumac kawsay’라는 컨셉이 있습니다. 비슷한 컨셉을 볼리비아에서는 ‘sumac camaña’ 라고 합니다. 자, 두 개의 표현이 나왔습니다. 대개 같이 병행이 되는 표현입니다만 굳이 나눠 해석하자면 ‘sumac kawsay’는 ‘good living’이라는 뜻입니다. 뭔가 자꾸 원하면서 아득바득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평형을 유지하면서 잘 살자는 의미이지요. 그리고 ‘sumac camaña’ 는 다 같이 함께 잘 살자, 즉 ‘good living together’를 뜻합니다.

질문: 중간에 잠깐 여쭙겠습니다. ‘equilibrium’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시는데, ‘equal’과 ‘equilibrium’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네그리: ‘equal’은 아주 익숙한 단어지요. ‘equilibrium’은 조금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는데, 자연과의 관계에 더 연관되는 단어로써 어떤 세계관을 의미할 때에 많이 사용됩니다. 반면에 ‘equality’ 는 단순히 어떤 것들이 동등하다는 의미로만 쓰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두 개의 컨셉에 대해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첫 번째 말한 건 ‘good living’이었고, 두 번째는 한 테이블에 있는 다른 다리라 생각할 수 있는 ‘good living together’, 즉 같이 잘 사는 것입니다. 이건 요즘 정치적으로도 이용되고 있는데,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아주 오래된 컨셉이긴 하지만, 새롭게 해석이 되면서 재조명될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도 좋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good living’은 가까이 있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보다 더 잘 살거나 더 못사는 게 아니고 우리가 어떤 제한을 가지고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겐 자꾸 새로운 걸 더 원하게 되는 성향이 있는데, 휴대전화나 자동차 같은 경우에 계속해서 모든 것이 바뀌고 새로운 것을 구매하라고 하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을 원하는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장만하기 위해서 일만 하다가 가는 것은 모두에게 권할 만한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의미에서 ‘good living’에 대한 필요성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처해 있는 위기 중에 하나가 ‘과생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고 그러기 위해 기계를 더 많이 돌려야 되고 하게 되면 모든 게 점점 맞물려 가면서 계속 더 많아지게 되는데 결코 좋은 삶의 방향이 아닐 것입니다. ‘good living’에서 얘기하고 있는 접근방식들은 성장 없이, 그리고 이런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압력 없이도 살 수 있고, 그러면서도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아이디어 및 모델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컨셉은 그냥 잘 살기가 아니고 더불어 같이 잘 살기입니다. 개인보다는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거죠. 이런 커뮤니티는 정치적 사회적인 맥락 안에 존재하는 공간으로써 앞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이라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당연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불평등이 문제라는 게 인식되어야지만 그 다음 단계로 가서 아까 말했던 ‘equilibrium’의 하모니가 존재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습니다. 
제1세계에서의 개념을 보자면, 계속 성장을 지속하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소수가 잘 살기 위해서 대다수가 어렵게 사는 건 잘 사는 게 아닙니다. 부를 많이 생산하지 않아도 적은 양의 부를 평등하게 가져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현존하는 시스템을 보게 되면, 제3세계 그리고 개발이 덜 된 나라들이 1차 제품들을 제공 하고 천연자원들을 착취당하는 그런 시스템이 있어야지만 끊임없는 성장이 가능하고, 그 구조에서 개발국들이 생존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요, 이 구조의 문제를 넘어 경제 분야뿐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큰 그림을 봐야지 새로운 ‘good living’에 대한 관점들을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볼리비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볼리비아는 배터리로 많이 쓰이는 리튬이 풍부한 나라인데, 리튬은 고가의 자원으로 볼리비아에겐 큰 자산입니다. 최근에는 이것들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착취의 속도를 늦추자는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착취보다는 이것들을 보호하는 쪽으로 대기업들이 새로운 형태의 계약과 다이나믹스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천천히 수년 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일자리뿐만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부를 한 회사가 독점하지 않고 볼리비아 사회 전체가 나눠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으로써  ‘good living together’의 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는 바로 지난주에 볼리비아에 적용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이 같이 잘 사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는 취지에서 정부에서 지원을 늘리는 국가건강보험제도가 적용됐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가 뭔가를 축적해 나간다는 개념이 아닌, 그것과 완전히 반대가 되는 새로운 도덕성입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적합하게 나눠 갖는 건데,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소사회에도 해당이 됩니다.   
제가 자주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당신 사회주의자 아니냐?”라는 것인데, 제가 얘기하는 것들은 단순히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누어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최근에 볼리비아의 외무장관이 이 모델이 사회주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는데요, 왜냐하면 사회주의 같은 경우에는 인간주의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환경을 배제하는 부분이 큽니다. 그러니 사회주의와 비교하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중심에 있는데 이 모델은 돈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good living’을 단순히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모델, 즉 ‘good living’과 ‘good living together’를 토대로 해서 나온 세계관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실질적인 욕구(needs), 그리고 영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아이디어가 비단 남미에서 시작되었지만, 다른 여러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현대사회에서는 ‘lack of identity’라는 것, 즉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쩐 존재인지 대한 인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체하게 된 것이 ‘consumer identity’, 즉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를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하는 방식인 거죠.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good living’,  ‘good living together’이고 이 두 개의 철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것뿐 아니라 우리가 갈구하는 영적인 욕구들도 채워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도 단순히 철학뿐만 아니라 헌법으로까지 자리를 잡게 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볼리비아에서도 모든 사람이 다 ‘good living’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고, 하나의 과정으로 보면 되는 건데, 그것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보겠습니다.
2008년 에콰도르가 이 ‘good living’이라는 컨셉을 헌법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했습니다. 지금 대헌장에 나온 부분을 보면, 사람들이 건강하고 깨끗하고 밸런스가 잘 이루어진 환경에서 살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이런 환경은 지속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오늘의 주제인 ‘sumac kawsay’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습니다.  

질문: 아까 말씀하신 리튬 개발의 경우 에콰도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고, 볼리비아에서는 성공을 했는데, 볼리비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어떤 이유들이 있었는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네그리: 두 개의 국가를 비교해 주셨는데 남미 국가니까 상당히 비슷할 것 같지만, 다른 점도 꽤 많습니다. 일단 에콰도르나 볼리비아나 토착민이 국민의 대다수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차이가 좀 있습니다. 에콰도르의 꼬레아 대통령은 외국에서 교육도 받았고, 출신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토착민 커뮤니티와 얘기하는 대화법이나 핸들링하는 접근방식도 달랐고, ‘sumac kawsay’를 헌법에 포함시켜 그것을 실질적으로 적용해 보려했지만,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반면 볼리비아의 경우, 대통령이 토착민 출신으로서 국민들이 퍼스트 네임으로 부를 정도로 대중적인 친화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훨씬 더 접근법이 쉬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sumac kawsay’에 대한 원론은 비슷할지 모르나 그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여러 차이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볼리비아에 대한 얘기를 더 하자면, (조율하고 타협을 한 이후에 헌법에 이 부분이 조금 더 강력하게 들어갔는데요) 실제적으로 언어적 측면, 문화적 측면에서도 자신의 나라는 다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헌법에도 표현 되어 있음으로써 다민족국가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민족국가라는 것을 나라에서 완전히 인정할 뿐만 아니고, 나라의 도덕적 윤리적 원칙으로서 헌법에 포함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어떤 민족은 어떤 것들이 중요하고, 다른 민족은 또다른 것을 중요시하다 보니 여러 가지가 들어가게 되는데, 가령 게으르게 살면 안 된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 훔치면 안 된다 등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소하지만, 다수성을 인정하는 원칙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음으로써 실질적으로도 악의 없고, 악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땅을 표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noble life’입니다. ‘noble’이라고 해서 어떤 귀족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고귀하게 사는 길’을 의미합니다.   
  
질문: 볼리비아의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네그리: 최근에 바뀌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사회적인 기여나 금전적인 기여를 고려하지 않고, 볼리비아의 시민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건강에 대한 어떤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수입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 겁니다. 아주 간단한 것이죠. 

질문: 사람들이 모두 의료혜택을 받으려고 할 텐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혜택이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거기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네그리: 물론 아직 문제도 많고, 병원시설도 많이 지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극이 되어 더 많은 병원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역사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볼리비아에서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하나, 국민연금제도에서도 큰 성취를 이뤘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자기가 기여한 것이나 돈을 내는 것과 상관없습니다. 지금 볼리비아 인구가 한 천 백 만 정도 되는데 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지금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질문: 오늘  ‘good living’과  ‘good living together’가 어떤 제도로서의 대안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 서구 모델의 산업화를 따라가는 국가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을 매우 성공적으로 이끌어간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전통철학보다는 산업화를 더 중요시하는 나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네그리: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브라질의 경우 한국의 산업화를 굉장히 멋지게 보고 롤모델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새마을 운동 등과 경제 발전에 대한 것들에 관한 것이지요.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개발’이라는 것은 센터에서의 개발, 그러니까 중심부에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의 개발이 있고, 주변부에서 개발은 됐지만 부를 축적하지 못하는, 일종의 착취당한 입장에서의 개발이 있는데, 그 중 어느 입장을 취햐느냐 라고 봤을 때 한국과 남미는 굉장히 다른 입장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특히 일본과 한국 같은 경우는 전쟁으로 인한 자금의 흐름 등 아시아에서의 공통점을 찾을 수는 있지만, 남미와는 상당히 다른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남미의 경우 산업화를 실행하려 한다면 쿠데타 등 여러 정치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됩니다. 그래서 아시아와 같은 산업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의 어떤 질서를 봤을 때 남미는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반면, 한국은 센터에 보다 가깝게 위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미 같은 경우는 식민지 시대에 입었던 피해가 현재 사회 구조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어떤 작은 컨트롤 그룹이 나머지 대다수의 그룹을 착취하는 구조가 있는데, 그런 것은 한국이랑 아주 다르게 때문에 결론적으로 비교하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래 보나 저래 보나 한국에서도  ‘good living’과  ‘good living together’ 컨셉이 적용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게, 남미와는 다른 산업화는 성공했지만 환경적으로 봤을 때에는 아직 가야할 부분이 굉장히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남미에서의 철학도 한국에서 실천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미에서도 불평등에 대한 의식과 자각이 굉장히 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에서도 ‘good living’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볼리비아 대통령이 ‘good living’을 정리하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지, 어떻게 나눠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떤 꿈을 꿔야 되는지가 중요한 원칙이 된다고 했습니다. ‘good living’ 입장에서 예를 하나 들자면, 아시아의 부탄이라는 나라에서는 나라를 평가할 적에 성장 지표나 경제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행복의 지표를 따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관점을 사회적이거나 환경적인 관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질문: 2008년도와 2009년도에 에콰도르와 볼리비아가 헌법을 만들었을 때,  ‘good living’과  ‘good living together’ 컨셉에 의한 사회의 변화가 실제 있는지, 예를 들어 아까 말씀하신 리튬 같은 경우에는 조금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그러한 변화의 사례가 실제로 있는지 하는 게 첫 번째 질문입니다. 두 번째는 현재 한국 정부에서도 아이디어 중 하나인데, 기존 개발 중심의 한국 사회의 주류에서 지금은 생태나 환경 문제와 관련한 ‘주류의 녹색화’라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에콰도르나 볼리비아나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러한 것들이 건강이나 보건 등의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인지, 실제로 가능하다면 어떤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네그리: 첫 번째로는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가장 강력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철학이 어떤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만, 이런 원칙들이 적용이 되어서 실제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이 컨트롤하던 나라의 많은 자원들을 자국화시키는 과정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수자원을 독립시키는 일, 일반적으로 ‘water war’라고 불리던 그런 과정이 나라가 컨트롤하게 되는 것도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인데, 그것은 굉장히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큰 스케일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예가 많습니다. 소사회에서도 리더십을 가져가는 운동이 많이 벌어졌고, 정책이나 실생활에서 모든 것들을 직접 시민들이 참여하는 움직임이 훨씬 커졌습니다. 반대로 에콰도르의 경우는 오히려 볼리비아에 비해서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환경적인 부분이 주류가 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한국은 인구가 많기 때문에 어떤 환경적 측면에서 변화가 있다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지만 브라질 경우는 그런 타격이 조금 더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구밀도가 적기 때문에 한국 같이 자연과 불안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입니다. 한국은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밸런스가 조금 안 맞는 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환경 문제는 정치 및 사상과도 관련되는 부분이 있고, 리더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나라의 방향성을 갖는 데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사회나 단체들에서 개개인이 기여하는 부분을 중요시 하고, 이런 사상을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지금 심리상태가 조금 복잡한데요,(웃음) 방금 미나마타병과 관련해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 심포지엄에 캐나다 원주민들이 발제자로 참석했는데, 왜 원주민일까 궁금했습니다. 많은 원주민 부족 중의 한 부족이었습니다. 숲과 강에 의존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했는데, 숲을 벌목하고 제지공장이 들어서면서 공장 공정 과정에 표백제를 사용하다가 수은이 유출되었습니다. 숲은 벌목되고 강은 수은에 오염되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더 가슴 아팠던 건 청소년들 자살률이 굉장히 높아서 가디언지에서 보도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발제자로 나왔던 분이 ‘mother earth’란 표현을 쓰고 ‘water is sacred’라고도 하더군요. 제가 지구법학회에서 원주민들의 전통적 세계관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과연 그들에게 ‘good living’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 맥락에서 숲과 강을 회복한다고 해서 전통적 생활 방식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전통적 세계관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부모 세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폰으로 연결된 세계 체계의 맥락에서 그들의 아이들이 생각하는 ‘good living’은 뭘까, 부모들의 ‘good living’과 같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 저는 우리의 삶이 질의 문제라는 것이라고 인식했고, 종국적으로는 저의 내면에서 나온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문제 되는 건 내면형성의 문제인데 이건 결국 교육의 문제이고, 체험의 문제일 것입니다. 또 한편으론 이 내면이 우리 삶의 방식과 조건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건 결국 개인 심성의 문제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우리 삶의 방식과 조건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가 하는, 굉장히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쉽지 않은 문제의 핵심은 역시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고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이 내가 생각하는 어떤 좋은 삶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질문하겠습니다.(웃음) 혹시 선생님의 아들 딸, 손자 손녀가 계신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이런 ‘good living’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지 궁금합니다.   

네그리: 이 ‘good living’이라는 컨셉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사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기술이나 과학적인 발전, 발달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컨셉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모두 활용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거기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제시하는 아이디어가 아니고 여러 다수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연을 보호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관점이든 또다른 관점이든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봐야하는 것인데, 자연이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보전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인구 분포와 사회의 다양성, 그리고 그 사회의 경제적 상황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기술을 가까이 하고 사는 사회도 있지만,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자신들의 삶을 존중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특히 그런 사람들의 의견이 역사적으로는 배제되어 왔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그런 삶에 대해서 배우고 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good living’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사람들의 철학에서 나왔지만, 중요하게 여겨야하는 부분은 아까 자살이나 우울증이 캐나다 토착민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그분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고 부가 축적되어 있는 사회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가 최고, 또는 최적화된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good living’은 조금씩 다른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철학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사회가 바뀌어가는 방향, 정치적인 것, 환경적인 것, 그리고 개발을 어떤 방향으로 새롭게 봐야할지 기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더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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