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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지성사에서 Holistic View의 전통, 니체의 철학을 중심으로' - 이동준 사무국장 특강
  •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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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첫 생태대연구회 특강은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이 맡았다. 20여 년간 교육, 복지, 환경, 문화 분야를 두루 섭렵하며 일한 그는 학부에서 고대 그리스철학과 독일 관념철학, 실존철학을 공부했고, 철학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왔다. 니체의 철학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양의 전체 철학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나간 이날 강연은 참석한 이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아래는 강연에 앞서 이동준 사무국장이 정리한 글이다.


'서양 지성사에서 Holistic View의 전통 – 니체의 철학을 중심으로'
서양의 지적 전통
우리가 아는 서양의 지적 전통은 근대 휴머니즘과 과학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이성적, 합리적, 물리적, 기계적, 환원주의적 사고의 전통에 그 연원을 대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단순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결합이라고 보는 관점이 모두 정당하지 않듯이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관념론과 유물론이 서로 경쟁하며 시대적으로 어떤 주기성을 띠고 경쟁해 왔다고 보는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서구사상의 역동성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과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서양문명의 성취가 정점에 달한 시기에 나온 해석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가 처한 지구적 위기 상황에 대해서 서양학자들은 과연 그들의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소외되거나 멸절되었다고 보는 사고의 전통을 복구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서양의 홀리스틱 전통을 구축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검토해야 하는 과제는 서구사상의 한계와 모순을 설명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전일적 세계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세계는 또 어떻게 구성되는 것일까? 세계를 구성하는 원질, 또는 실체가 있다면 그 미시적 입자들의 성질과 상태, 결합과 분리를 통해 과연 우리는 이 복잡계를 이루는 수많은 물질과 생명현상, 사회와 역사를 이루는 인간행동과 사건, 사태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와 대상, 물질을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로부터 시작해서 전체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이라면, 부분을 아무리 모으고 합쳐봐도 그 합만으로는 전체를 다 설명할 수 없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일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우리는 과연 정당하게 전일적 세계관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연원에서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학파, 그리스의 비극작가,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 종교, 중세 시기에는 그노시스파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스피노자와 쉘링, 쇼펜하우어와 니체,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들뢰즈, 가타리, 마투라나의 사상과 더불어 샤르댕과 토마스 베리, 샐리 맥페이그 같은 현대신학자에게서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흔적들에 섣부른 정당성을 부여하는 순간 그동안 서양의 지적 전통에 편입된 사고를 해왔던 우리는 지금 인류가 당면한 지구 위기 역시 그 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서구사상 안에 배태되어온 것이라는 오만한 독선에 다시 빠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모든 가치의 전복
이러한 시점에 우리가 니체를 다시 소환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문명의 본질을 그 근본부터 뒤집어놓으려는 사고의 주창자였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하는 ‘모든 가치의 전복’, ‘니힐리즘의 도래’,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와 같은 말들은 서구사상을 그동안 지탱해온 플라톤적인 형이상학과 그리스도교적인 도덕을 그 뿌리에서부터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는 그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니체가 의도했던 가장 근본적인 전복은 인간의 이성주의에 대한 반기였다. 칸트는 이성의 한계를 현상계에 한정하려 하였지만 그가 구축해놓은 이성주의는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고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고 도달하게 하는 주체라는 인식으로 서구사상을 몰아갔다. 니체는 헤겔에 의해 하나의 체계로 완성된 이성의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했다. 역사의 주인인 이성과 이성을 지닌 근대적 주체로서의 시민의식의 자각, 이성의 계몽에 의한 역사의 낙관주의적 발전에 대한 기대가 이제 하향곡선을 그리며 서구문명에 위기와 불안감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인간 이성이 절대자의 자리에 앉게 된 이성 중심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근대적 주체인 인간의 이성과 주체의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최고의 가치를 스스로 탈가치화하는 작업으로 삼고자 했다. 니힐리즘이란 그동안 이성과 주지주의,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도덕이 지배해왔던 서구사회에 니힐리즘이 도래하여 기존의 가치들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서 이제 새로운 가치의 창조가 필요하게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지만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대신 말했던 것처럼, 그가 말한 사상과 예견들은 시대에 비해 너무 빨랐기에 그는 당시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사상가였다.
생성의 근원 – 카오스, 자연, 대지
니체는 그의 철학에서 생성의 근원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 그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기존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틀을 넘어서 영원회귀의 사유를 통하여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생성에 각인시키려고 시도한다. 니체의 카오스 개념은 이런 이유로 인간의 자기완성, 자기창조의 과제를 역동적으로 제시한다. 카오스는 코스모스로의 이행을 위한 전 단계의 상태나 재료, 또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필연적인 생성이며 인간에게 무한한 자기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심연이다. 카오스는 의미의 불확정성, 현존재의 다의성을 뜻하며, 무한한 해석을 허용하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
니체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니체는 근대적 자연개념 속에서도 형이상학적 가정들이 스며들어 자연을 탈자연화시켰다고 비판한다. 자연에 법칙을 설정하고 자연현상을 인과적 해석으로 설명이 가능한 복잡한 기계로, 이용과 정복의 대상으로, 그리고 인간의 발전과 진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니체는 인간의 육체성을 토대로 그동안 형이상학이 설정해놓은 왜곡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시도한다. 니체에게 자연은 거대한 생명의 체계이며 그 자신에 의해 생성되고 유지되는 전일적 존재로, 인간을 감싸 안는 영원한 생명이자 만물의 근원적 어머니와 같다. 그리고 대지는 인간이 몸의 본래성을 되찾게 하는 유희 공간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토대이자 가치의 출처이기에, 인간은 배후세계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 대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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