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법강좌

지구법강좌는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을 국내에 소개하고, 현재 인간중심주의의 산업문명이 초래한 폐해들을 다루며 대안을 연구,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사단법인 선과 공동 주최로 연 4회 개최하고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지정 변호사 인정 연수 프로그램으로, 주요 대상은 거버넌스 체계의 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법률가-변호사와 로스쿨생 등입니다.

지난 강좌 소개
2017 지구법강좌 제 3회 '동물 윤리와 법 - 동물의 도덕적 지위와 동물권' (9월 4일)
  • 2017-10-16
  • 324



2017
년 제3회 지구법강좌가 지난 94일 변호사교육문화관 4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동물 윤리와 법 동물의 도덕적 지위와 동물권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 강연은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교양학부의 최훈 교수가 맡았다. 현재 철학을 가르치는 최훈 교수는 논리학을 주 전공으로 삼고 있으며, 응용윤리로서 동물윤리에 관한 저서 동물을 위한 윤리학〉 〈동물실험 윤리를 집필한 바 있다. 아래에서는 최훈 교수의 강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강연 자료의 흐름에 맞춰 정리했기 때문에 함께 첨부한 강연 자료와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 동물권, 동물법

 

철학에서 동물 윤리를 다루는 방법은 크게 두 부류다. ‘동물권이란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보편적으로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라고 표현한다. 본 강의에서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라는 표현을 쓸 것이다. 피터 싱어는 동물권이라는 말은 쓰지 않고 동물해방 개념을 도입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동물에게도 권리를 인정하자는 입장이 있다(톰 리간).

 

우리 민법은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으나, 동물에게도 도덕적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면 민법에서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 도출이 가능하다.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반인의 방식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 슈바이처, 환경윤리학 전공자

 

정말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는가?

생명의 존재 범위는 다양하다. 모든 생명을 다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 말은 타당하지 않다. 인도 자이나교는 걸어가면서도 생명을 밟지 않기 위해 비질을 하고, 불교 역시 식물을 소중하게 다룬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보통사람에게 이는 능력 밖의 요구다. 실천 가능성이 낮다. 칸트는 당위는 능력을 함축한다고 했는데, 당위를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이러한 주장은 당위 외에 근거를 대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2. 감정 동물은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우리와 친구이므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감정은 보편적이지 않다

개를 아끼는 문화는 아직까지 서구에게만 친숙한 것이다. 일례로 이슬람 문화에서는 마호메트가 숨었을 때, 개가 짖어서 들켰던 연유로 개를 싫어하는 문화가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가져야 하는) 이성에 의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감정의 당위성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나, 현대 문명에서 이성의 존재는 당위성이 있다.

 

 

철학자의 방식

 

누가 보아도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동물 학대에서 출발 -〉 동물 학대는 비윤리적인가?

-〉 비윤리적인 이유를 동물에 대한 다른 대우에도 적용

 

이른바 확장 방식의 사유다. 예를 들어 육식(사육환경 및 도살문제)과 동물실험, 동물원, 애완견 문제 등에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2. 인종 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가 그르다는 데서 출발 -〉 왜 올바르지 않은가? -〉 올바르지 않은 이유를 동물에 대한 차별에도 적용

 

피터싱어는 이러한 방식을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라고 했다. 옛날 아테네는 성인 남성에게만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였으나, 현대에는 노예나 여성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인간사회는 왜 평등해야 하는가? 이 근거를 동물에게도 적용해보는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서 미국의 경우 동물보호 캠페인에서 흑인 차별에 대한 비유를 쓰기도 한다(동물을 차별하는 방식은 흑인을 차별하는 방식과 같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흑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첫 번째 접근 방식

 

1. 동물 학대가 가능하다는 입장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심과 신을 체계적으로 구분한 최초의 학자다. 동물은 영혼이 없는 움직이는 기계와 같기 때문에 학대를 해도 상관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 신봉자들은 생체 해부를 정당화한다. 현대 학자 중에는 우리가 데카르트의 사상을 오해한 것이다라며 변호하는 커팅햄이라는 철학자도 있고, 되려 데카르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철학자도 있다(P. Carruthers). 그 이유는 고통의 전제는 언어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굉장히 예외적인 소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동물 학대는 왜 나쁜가?’에 관한 질문에 대한 관련 입장들

 

간접적으로 나쁘다는 대답을 우선적으로 한다

동물은 간접적인 도덕적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직접적인 도덕적 의무를 진다. 그렇기에 타인을 해하는 것은 비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이 있는 물건에는 간접적인 도덕적 의무를 진다. 직접적 도덕적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의 재산권 훼손했기 때문이다. , 동물도 주인의 재산권 훼손이다. 따라서 동물은 간접적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세상에는 주인 없는 동물이 더 많고, 또 자기 소유의 동물이나 허락 받은 동물에 대한 학대는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비판 받는다.

 

인간의 잔인한 품성을 기르게 하기 때문에 나쁘다(도덕적 파급효과)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하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칸트는 푸줏간을 하는 사람들은 판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에서도 역시 동물은 간접적 도덕적 지위만 갖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비판은 노직이 한 마지막 사람 논변이 있다. 일종의 사고 실험으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최후의 1인은 동물학대를 해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할까? 동물에게 다정하지만 인간을 차별하는 사람의 일례로 히틀러를 들기도 한다. 일설에 히틀러가 동물 애호가라고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에서 진행한 여러 연구 결과에서는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이 동물에게도 잔인하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동물과 인간이 서로 친숙하게 지내는 미국 사회 특유의 문화에서만 나타나는 통계일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나쁘다는 직관에 동의하는 경우 동물에게도 직접적인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지는 차후 문제다.

-〉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간접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나쁘다.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두 번째 접근 방식

 

1. ‘인간에 대해 합의된 도덕적 결론을 동물들에게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

 

이 생각은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는 옳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종 차별주의(speciesism)는 인간 종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는 것. 그러나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옳지 않은 이유를 그대로 적용하면 종 차별주의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법 11: 평등권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2. 그렇다면 왜 인종·성차별주의는 옳지 않은가

사실(팩트)에 의거하면, 인종/성별에 따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있고, 모두 다르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똑같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면, 다르면 차별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차별(노예제 등)은 지적 능력 등의 팩트와 상관이 없다. 화장실 사용이나 버스 자리에 앉는 것은 지적 능력과는 상관없는 영역이다.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염전 노예로 부려도 괜찮은가? 따라서, 팩트에 의한 근거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는 즉,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은 피하고 싶다는 것이며 이는 지적 능력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다. 그 욕구를 침해했을 때는 성별, 피부색(지능지수)과 상관없이 누구나 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위의 욕구를 침해하는 차별은 나쁘다.

 

3. 동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를 침해하면 나쁘다

 

동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은 피하고 싶다는 것이다. 유인원은 지적은 쾌락 욕구 높다. 돼지나 닭도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소만해도 도살장에 끌려갔을 때 도살당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다. 미국의 한 동물학자는 도살장의 길을 구부러지게 만들어 앞의 소가 도살당하는 장면을 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죽이면 안 된다는 당위성이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게는 고통과 인식능력에서 비롯한 공포감이 존재하고, 자기 정체성(한 개인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계획)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어떨까? 유인원은 예외로 하고, 동물은 자기 정체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통 없이 죽이면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를 들어 전기충격기로 기절시킨 후 도살시키는 것 등이다. 미국에서 발간한 도살장이라는 제목의 책은 도살장에 대한 고발을 실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도살장의 비윤리적, 비위생적 환경을 지적한다.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에게는 그것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명제가 따른다.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는? 간접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직접적인 도덕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 죽여도 상관없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은 편하게 죽여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어느 동물까지 죽을 때 고통을 느낄까? 과학적으로 물고기류까지는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척추동물). 가재 등의 갑각류와 곤충은 고통 느끼지 않는다. 예외로, 두족류(문어, 오징어)는 연체동물 임에도 고통을 느낀다.

 

4. 인간과 동물, 동물과 동물 간의 욕구 차이

 

인간과 동물의 욕구(쾌락과 고통)는 서로 다르다

인간에게는 배움과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동물에게는 그런 욕구가 없다. 인간과 동물은 고통의 양도 다르다. 예를 들면 신생아의 볼기를 치는 것과 말의 볼기를 치는 것은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다르다. 이때 각자의 욕구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동물끼리도 기본적인 욕구가 다르고, 이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코끼리 : 하루에 몇 십 킬로미터를 걷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돼지, : 사실 야생에서 생존해야 하는 위험에 비해, 사육을 당하거나 동물원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욕구 불충족의 문제는 남는다. 이들도 땅을 밟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지만 닭의 경우 평생 철창 위에서 사육된다.

돌고래 : 하루에 몇 백 킬로미터를 헤엄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이를 종합하면 사파리와 같은 아주 큰 동물원을 제외하고는 거대 동물은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유인원의 경우 인간과 비슷한 자존심이 있다면 유인원도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일례로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어로 숲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인도네시아에선 오랑우탄을 사람과 같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리는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피터 싱어는 동물운동가들과 함께 유인원 프로젝트(실험용 침팬지를 운송하는 항공회사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동물 실험을 억제하는 프로젝트)’ 캠페인을 하고 있다. 지능지수가 높은 유인원에게 하는 동물실험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장품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견해가 점차 목소리를 얻고 있다. 일명 토끼에게 가하는 드레이즈 실험(화장품 등을 눈에 넣었을 때 매운지를 확인하기 위해 토끼 눈에 비비는 실험)이 있는데, 특히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 제안

 

동물 역시 자연 상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인간처럼 본래의 습성을 존중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돼지의 경우 구정물일지라도 더울 때 물을 몸에 비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슬람이나 유대교에서 돼지를 키우지 않는 이유가 돼지가 물에 몸을 비비는 습관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에서는 기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는 인간과 먹이를 경쟁한다고 한다(소나 양은 인간이 먹지 않는 풀을 먹고, 그 분뇨가 토양에 도움이 되기도 하므로 키운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는 우리 법률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우리의 동물보호법은 영국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의 다섯 가지 자유가 반영된 것이다. 동물보호법 제3(동물보호의 기본원칙)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원칙이 준수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할 것

2.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

3.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고 불편함을 겪지 아니하도록 할 것

4. 동물이 고통·상해 및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할 것

5. 동물이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지 아니하도록 할 것

그러나 동물을 복지 수준을 높여 사육하는 경우 고기의 가격이 3배에서 10배 가까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동물복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인간 역시 법적지위가 있지만 그 내용은 다 다르다. 따라서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 또는 법적 지위가 있더라도 도덕적 지위의 내용은 각 동물에 따라 달라지며, 위 조건이 만족되면 동물 종에 따라 동물 이용(육식 등)도 가능하다. 육식의 가능 여부는 동물해방론(피터 싱어, 육식 가능)과 동물 권리론(톰 리간 Tom Regan, 육식 불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피터 싱어 역시 의심의 (이득)원칙을 주장한다. 덤불 뒤에서 바스락 거리는 물체가 어떤 것인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총을 쏠 수 없다. , 동물 윤리를 지켜야 하는 동물로 의심되는 경우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육식의 빈도와 동물원 문제 등 현재의 많은 관습들이 바뀌어야 한다.

 

 

동물 사육의 현실

 

다단식 닭장에서 사육

돼지 좁고 불결한 우리에서 사육하며, 꼬리를 자르고, 송곳니를 제거한다.

철분 섭취를 제한하여 인위적으로 빈혈에 걸리게 한다. 소가 철분이 부족해야 우리를 핥아 철분을 보충하고, 이를 빌미로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우리에 가둔다. 자연 사료를 먹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소에 대한 권리 의식은 높은 편이다. 일례로 정부에서 위와 같은 사육방식을 고소득 창출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권한 적이 있었는데, 농부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었다.

 

 

가능한 반론들

 

1. 사람과 동물은 다르지 않은가?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2. 동물이 고통을 받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말 못하는 어린아이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

 

3. 식물도 고통을 느끼지 않은가?

느끼지 못한다. 식물은 동물처럼 중앙 집중적으로 조직된 신경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4. 윤리는 기본적으로 계약론적인 성격이 있는데, 동물과 계약을 할 수 없지 않나?

인간 역시 어린이, 지적 장애인, 3세계 사람들, 미래의 후손들과 계약을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지만 도덕적인 의무를 진다.

 

5. 동물들도 서로 잡아먹지 않는가?

동물이 한다고 해서 모두 따라 할 것인가? 인간은 동물과 달리 도덕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는 도덕이 동물과 구분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데 동물 윤리에서만 다르게 볼 수는 없다.

 

6.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나?

자연스럽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서 당위는 도출되지 않는다(자연주의의 오류).

 

7. 동물은 자연 상태에서는 생태적, 사회적 위협을 받으므로 자유롭지 않은 존재 아닌가?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생태적, 사회적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감옥이 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사실 작금의 동물 사육 행태는 자연 상태보다 더 나쁘다.

 

질의응답

 

1. 동물의 도덕적 지위와 관련한 근거로 통증(고통)에만 치중하여 설명하다보니, 식물은 먹어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오히려 통증보다는 생존의 욕구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윤리 역시 논리, 이성, 이유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는 부분에 기초해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동물의 고통에 관한 연구는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발전한 것으로 추측한다.

생존 욕구를 자손 번식의 욕구라고 한다면 피터 싱어는 한 가지 동물을 육식하는 대신 반드시 하나의 자손을 번식하도록 하고 있다.

생존에 관한 부분도 연구가 계속된다면 논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많은 생명체에게 생존과 번식이 가장 중요한 욕구이므로 이를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채식은 어쩔 수 없는 이익형량의 문제 때문에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결국은 고통의 문제라기보다 이익형량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물의 번식과 관련해서는 사실 동물이나 사람이 식물의 부분을 먹음으로써 번식에 유리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3. 동물의 권리 인정(원고적격 인정문제)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경우에는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하여 원고적격도 인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전 도롱뇽 사건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도롱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것은 도덕적 지위와 관련하여 오히려 간접적 지위 개념을 차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 도룡뇽이나 부엉이에게 직접적인 터전 손실의 손해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별개로 따져보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터널 공사를 하더라도 도룡뇽이 안전하게 이주하여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손해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이 강의에서 주장하는 논리를 확장하는 경우 인간의 사육행위가 결국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채식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채식을 강요할 수 없다(알래스카 등). 채식으로 생존이 가능한 지역에서 채식을 하는 것이고, 윤리적인 사육과 도축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육식도 가능하다.

 

5. 채식을 떠나서 과거 없이 살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잡식을 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나.

영양학적인 논문에서 인간의 생존과 건강에 있어 육식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임산부와 태아 제외).

 

6. 채식을 수년 째 고민하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인데, 채식 권장에 관해 해줄 조언이 있는지?

외국에서 채식이 가능한 이유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먹지 않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문화적으로 받아들이기 수월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채식과 관련해서는 본인의 저서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플렉시테리언(사회생활 하는 경우에는 먹고 자유롭게 음식 선택이 가능할 때는 먹지 않는 경우)이 되거나 요일제를 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7. 계란은 먹고 닭고기는 먹지 않는 채식 중인데, 동물에게 있어 도축과 오래 살면서 계속 고통을 겪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쁜가?

고통이 길다면 짧은 게 낫고, 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으니 고통 없이 죽이는 쪽이 나을 것이다. 다만 이미 태어난 생명에 대하여는 생명으로 갚아야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고민이 덜 하다고 할 수 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