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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사람, 자연의 권리를 위한  모색의 순간과 고민을 돌아보다
  • 2022-03-22
  • 872

지구와사람,

자연의 권리를 위한

모색의 순간과 고민을 돌아보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지구와사람의 회원들이 침묵하는 지구를 위하여라는 주제를 앞에 두고 성수동 어느 회의장에 모여 앉았다. 201511월 초 어느 가을날, 지구와사람이 연 첫 컨퍼런스였다. 이곳에서 오간 지구법생태문명이라는 생경한 단어들과 지구가 닥친 심각한 위기 이야기는 단순히 환경에 대한 지지와 호기심만으로 덥석 회원으로 합류한 이들에게는 적잖은 충격과 혼란을 안겼다. 그 후 6년 동안 지구와사람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말없이 인간의 과오를 지켜보는 지구를 위해 서로의 진지한 생각들을 나눴고, 지난 2021년에는 지구법학과 한국사회 새로 읽기라는 주제로 여섯 번째 정기 컨퍼런스를 열었다. 거듭되는 이 자리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도울 길임을 믿으며. 지구와사람이 그간 연 컨퍼런스를 다시 돌아본다.

 

컨퍼런스, 탐구를 위한 장

지구와사람은 2012년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의 한 공부모임으로부터 시작됐다.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가 주창한 생태문명사상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공부가 너무나 재밌어서 계속해서 탐구하고 또 탐구하길 원했다. ‘왜 우리가 모든 생명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삶을 살게 되었는가, 산업문명은 왜 우리를 파괴하는가.’

삶이라는 근본적인 난제의 해답을 여기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안고, 이들은 우리 삶의 기저를 이루는 철학, 정치, 경제, 산업,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공부를 시작했다. 작은 규모였던 모임은 호기심이 커질수록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해 발표하거나 관련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확장됐고, 이는 생명문화 포럼이라는 지구와사람의 전신이 됐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만의 공부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생태문명지구법이라는 이 중요한 개념을 알리고, 계속 탐구해나가자는 생각을 했다.

2015105일 열린 창립총회 이후 같은 해 11월 연 첫 컨퍼런스는 그간의 공부를 정리하고 지구와사람의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자리였다. 토마스 베리의 제자인 이재돈 신부와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가 대담한 지구의 꿈을 찾아서는 지구를 넘어 생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새로운 문명을 찾기 위해 인간의 기원과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생태대연구회의 정체성을 알렸다. 이외에도 기후변화 국제적 대응의 현주소, 지구법의 국제적 흐름 등을 알리며 기후와문화연구회’, ‘지구법학회의 공부 방향 역시 정립했다. 현재는 여기에 인간과 비인간의 동등한 관점에서 새로운 정치 윤리학과 생태론을 탐구하고, 생태적 관점의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바이오크라시연구회가 활발히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 컨퍼런스로의 진전

2018, 파주에서 보낸 3일은 지구와사람에게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지구와사람 기후변화 시대에 성찰이 동반되지 않은 채 기술대(Technozoic era)로 치닫는 현실을 사유한 2016년 컨퍼런스 오늘의 인간, 미래의 지구〉, 3년간의 공부와 모색을 삶이라는 구체적인 환경에 어떻게 대입할 것인가를 논한 2017삶의 세계와 생태적 전망컨퍼런스를 거쳐 처음으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지구와사람은 유엔 Harmony with nature 다이얼로그에 참여하는 등 해외와 교류해왔지만 컨퍼런스를 통한 직접 교류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당시 이 분야 전문가이자 클레어몬트 과정사상연구소 공동대표인 존 B. 캅 박사를 비롯해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생태문명, 신학, 환경, 과학, 경제, 법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컨퍼런스에서 지구와사람 회원들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염원하는 각 분야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다. 우주의 한 점, 지구. 그중에서도 생태문명으로의 이행을 바라는 목소리는 아직 작고 작지만 전 세계에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위기의 시대라고 자주 절망하기도 하는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품게 했다. 특히 이 3일간의 교류는 생태적 전환을 위한 약속이 담긴 파주 선언을 함께 채택해 더욱 의미 있었다.

 

전쟁의 상징이 생태평화의 상징으로,

DMZ에 주목하다

어떤 곳이 생명에게 가장 평화로운 곳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 자체로 가장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지구와사람은 2019, DMZ로 눈을 돌린다. 남북으로 각각 2km 펼쳐진, 70년이 넘도록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 우리는 보통 DMZ를 전쟁의 상처로 가득한 공간이라고 인식하지만 한반도 식생사에 정통한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이 비무장지대야말로 한반도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식생을 자랑하는 생명의 보고라고 말한다. 자연 스스로 전쟁의 상처를 보듬은 치유의 공간인 것이다. 지구와사람은 강원도와 함께 2018년 판문점선언처럼 갑자기 찾아올 평화 무드 속에서도 DMZ는 개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지켜져야 함을 명확히 하며 2019자연의 권리와 생태적 전환〉, 2020생명과 공동체의 미래국제 컨퍼런스를 연달아 개최한다.

2019년 컨퍼런스 기조강연을 맡은 클라우스 보셀만 교수는 환경은 결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지적과 함께 기존의 소유권 개념, 주권국가 중심의 법적 사고를 탈피할 때 지구상에 공존하는 생태계를 위한 지구 되찾기가 가능함을 강조했다. 지구법학회 정혜진 변호사와 함보현 변호사는 ‘DMZ의 법적 현실과 자연의 권리를 위한 제안이라는 발제에서 DMZ의 법적 현실과 보전의 한계, 정전협정 체제를 새로운 지구 거버넌스로 바꿔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발표했다.

2020년부터는 매년 개최되는 평창평화포럼에 참가하며, 20212월에는 신기후 평화 체제와 DMZ의 권리적 접근’, 20221월에는 ‘DMZ 평화지대와 그린 데탕트세션을 기획 진행하는 등 DMZ를 평화체제 이후에도 자연 그대로의 땅으로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자연의 권리를!

지구와사람 창립 이후 6.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더욱 촉발했고, 202111월 있었던 글래스고 기후합의에서 197개 당사국은 치열한 논쟁 끝에 탄소감축으로의 발걸음을 힘겹게 뗐다. 탈 석탄이 아닌 석탄 감축에 머무른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구와사람은 6년간의 탐구를 모아 지난 20211228일과 202215일 양일간 지구법학과 한국사회 새로 읽기라는 주제로 여섯 번째 정기 컨퍼런스를 열었다.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지구와사람 사무 공간 유재에서 연 컨퍼런스로, 지난 6년간의 성장기를 넘어 이제는 점점 영글어 가는 지구법학을 한국사회와 연결해보는 실천적 모색의 시간이었다. 학술 단장 겸 상임대표인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먼저 지구와사람의 학술 분야를 세분화해 설명하고 현재 한국사회의 생명의 청치의 필요성과 심미적 윤리의 과제에 대해 논했다. 발제자로 초대된 탄소중립대책본부 김성환 국회의원은 탄소중립 전환과 지구법학의 의의를 주제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다양한 분야에서 살펴보았다. 특히 그는 자동차 시장 등에서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이 포착된다며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빠른 탄소중립을 이룰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 둘째 날, 첫 번째 세션에서 지구와사람 공동대표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구법학 관점에서 한국 헌법의 해석론을 주제로 우리 헌법에 지구법 대입할 경우 어떠한 과제가 드러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여기서 그는 지구가 인간 존재 위에 자리한 것이 지구법학의 관점이며, 우리나라 법률주의에 의해 지구법이 훼손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정혜진 변호사는 그간 지구법학회는 지구법학의 가치관 그 자체에 집중해왔지만 오늘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에서의 지구법학 대입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마련된 것 같다며 이번 컨퍼런스의 의의에 대해 소감을 밝혔다.

 

여전히 좋아서 하는 공부

지구와사람은 이처럼 매년 정기 컨퍼런스 자리를 통해 조금씩 완성해 가는 생각과 탐구를 재정리한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우리의 법과 사회, 더 크게는 인류 공동체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지구와사람 공동대표인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시작하며 항상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스스로는 지구법 이론이 더 구체화되고 탄탄해지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 공동대표인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왜 지구와사람에 몸담고 있나라는 컨퍼런스 말미의 공통 질문에 고민이 이토록 많은 시대에 지구에 대한 질문과 담론을 이야기 할 유일한 곳이라서라는 인상적인 대답을 남겼다.

사람들은 왜 모여서 이렇게 어렵고 답도 나오지 않는 공부를 하느냐고 지구와사람에게 종종 질문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던 기존의 방식과 흐름대로 살아가기보다 더 나은 인류의 삶을 향한 답을 추구하며 나아가는 것은 어쩌면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모든 주체가 친교하는 진정 평화로운 삶을 구축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구와사람은 지속적인 컨퍼런스 개최를 통해 사유를 공유하고, 발표하며 자연의 권리라는 담론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지구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지속가능을 향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최초에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된 그 탐구 이유는 지구와사람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글 전민진

지구와사람 전 사무차장으로 본업은 콘텐츠 기획자다. 지구와사람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 줄이는 삶을 시작했습니다(2021, 비타북스)를 썼다.


[월간환경] 4월호 "지구와사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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