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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환경] 지구와사람 칼럼 10월호 -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
  • 2022-11-14
  • 304
“커피 한 잔만 타줄래?”


작은 아파트에서도 집안일로 늘 분주했던 엄마는 어떤 의식처럼 하루에 두 번 커피를 마셨다. 한 모 금 들이키고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족들의 커피를 타기 시작한 건 초등 학교 때, 달달한 믹스커피를 맛본 이후다. 아직 어 려서 안 된다고 했지만 맛이 너무나 궁금했고, 결국 일은 터져버렸다. 당시 대학생이던 여덟 살 터울 언 니가 투명한 유리잔에 얼음을 넣은 캐러멜색 믹스 커피를 살짝 맛보여줬다. 이후 컵에 얼음이 차랑차 랑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한 입만!”을 외 쳤다. 커피를 타는 일은 재미있었다. 엄마는 고전 레시피인 커피, 설탕, 프림 둘둘둘에서 점점 커피 하나, 설탕 둘로 취향이 변했다. 언니는 세련되게 커피 두 숟갈, 같이 살던 막내삼촌은 커피 둘에 설 탕 하나를 타주면 됐다. 언젠가는 나도 커피 마시는 어른이 되어야지 꿈꾸며 정성스레 커피를 탔다.


커피 잘 마시게 생겼는데요?

결론적으로 나는 커피를 잘 마시는 어른으로 자라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커피 한 잔을 온전히 마신 날 호된 배앓이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다양한 커피를 마셔봤지만 꼭 탈이 났다. 경미한 경련과 함께 이틀 밤을 꼬박 지새웠던 적도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건 사회에서 다소 귀찮거나 불편한 일을 겪을 것임을 예고하는 일이다. 2016년 기준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77잔인 나라, 콧대 높은 커피 체인이 앞다투어 진출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커피 취향이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가 개발되고 있다. 로스팅 방법, 커피를 내리는 방법 외 에도 커피를 내리기 전 마음가짐까지도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는 모양새다. 그러니 상대에게 묻지 않고 커피를 내주는 일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어색하지 않다.

“전 선생님은 커피를 잘 드실 것 같은데, 의외네요.”

커피를 좋아할 것 같다는 나에 대한 흔한 오해다. 환경 학술 재단인 지구와사람 사무처에서 공우석 교수를 처음 만난 날에도 역시 이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 그와 나눈 짧은 커피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커피는 마시지 않지만 으레 커피를 내려 “한 잔 드릴까요?” 하고 묻는 내게 그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가운 마음에 “저도요!” 하고 답하고는 “잠을 못 주무세요?”라고 덧붙였는데, 돌아온 답은 당시 나로서는 짐작도 못 할 종류였다.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때문입니다. 원래 좋아했는데, 끊은 지 30년 가까이 되어 가네요.”

지구와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왜 커피와 기후가 관련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체면을 차리느라 멋지다는 듯 “역시”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잠 때문에 커피를 줄였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종종 들어왔지만 ‘기후변화’ 때문이라니.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동질감 때문에 그 뒤로 더 자세히 그를 들여다보게 됐다. 자연스럽고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주름, 낡아 보이지만 멋스러운 재킷, 목에 건 라이카 카메라. 꾸민 듯 안 꾸민 완벽한 스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나는 공공연하게 “멋진 공 교수님”이라고 칭해왔다. 그가 쓴 책 《왜 기후변화가 문제일까?》를 주제로 청소년 대상 강연이 열렸을 때는 중학생 조카를 데려가 경청하기도 했다. 그를 보며 나는 언행일치를 실현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인지를 자주 실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나는 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까지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열악한 나라에도 가보고 천국인가 싶을 정도로 좋은 곳에도 가봤죠. 조물주가 우주를 창조할 때는 지구가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든 분명 똑같은 것을 물려받았을 텐데, 다르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갈수록 정상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느꼈죠. 이대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고, 어떻게 하면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해요.”

공우석 교수는 기후변화가 식물 분포와 생물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심이 많은 지리학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식생사와 문화 이야기, 기후변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나간다.

2년 전 늦봄, 공우석 교수를 필두로 지구와사람 소속 열다섯 명은 대관령으로 생태 여행을 떠났다. 그대 나는 ‘숲의 레이어’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선자령 가는 길에는 큰 나무도 있었고, 바닥에 촘촘히 자라난 풀과 무릎까지 오던 속새와 들꽃들, 허리춤과 내 키만 한 식물들이 층위(레이어)를 이루고 있었다. 공우석 교수는 그게 바로 자연 그대로가 만든 생물 다양성이라고 했다. 반면 일부러 조성한 숲에서는 나무가 띄엄띄엄 규칙적으로 줄지어 있었다. 평소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났을 테지만 키 큰 나무뿐인 그 공간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 ‘와, 이런 게 생물 다양성이구나.’ 다양한 인종과 성별, 취향이 다채롭고 재미있는 지구를 이루듯 식물계도 마찬가지다.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은 서로 얽힌 층위가 각자의 높이에서 묵묵히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 공우석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바늘잎나무 숲을 거닐며》의 서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나무와 숲에 대해 알면 자연을 보는 재미가 여러 배로 늘어난다. 한 그루의 나무가 한 자리에 자리 잡기까지 긴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온 이력과 사연이 있다. 나무와 숲을 바르게 알면 지역의 역사, 생태, 문화까지 알 수 있고 자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생태적 감수성과 지혜를 가지고 자연을 알면 인간 삶의 질도 높아지고 우리 미래도 밝아진다


그래서 그는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재촉하고자 식물과 생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집필한다. 환경오염도 빼놓지 않는 주제다. 그는 식물을 보려고 자주 자연 속으로 떠난다. 그때마다 식생이 변화하는 모습은 그에게 계속해서 ‘기후변화’라는 위기의 메시지를 던진다.

“사람들은 대부분 생물의 멸종이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닥친 미세먼지나 코로나19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지요. 수많은 생물종이 사라지고 있고, 심지어 그 생물이 어떤 것인지, 지구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알지 못해요. 우리에게는 이미 사라진 생물종을 되살릴 능력이 없으니 그거야 말로 재앙인데 말이죠. 당장 내 집에 있는 반려동물이나 식물만 소중히 여길 게 아니라 문밖에 있는 생명에도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커피가 왜?

생물 다양성을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우석 교수는 30여 년 전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로 열대우림이 파괴되면서 생기는 기후와 물 순환 시스템의 교란 즉, 기후변화와 사막화, 생물 다양성의 파괴, 빈곤 문제에 대해 강의하고는 연구실로 돌아왔다. 너무 열정적이었던 나머지 피곤을 달래려 자연스럽게 컵에 믹스커피 한 봉지를 털어 넣었다. 뭔가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했던 말과 완벽히 모순되는 행동이었다. 어느 평범한 오후에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리고 그 커피는 공우석 교수 인생 마지막 커피가 되었다. 1970년대 후반 대학 시절부터 빈번히 카페를 찾던 그였고, 당시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사이폰 커피숍 ‘빈센트 반 고흐’를 제 집처럼 드나들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는데 말이다.

이쯤 되면 “커피가 왜?” 하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커피는 돈이 되는 환금 작물이다. 국제커피기구(ICO) 통계에 따르면 생두는 매년 1억2천만~1억4천만 포대가 생산된다. 한 포대 기준 무게는 60kg 정도. 커피는 세계적으로 하루에 25억 잔씩 소비된다. 이 엄청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커피가 자라는 적도 주변 열대우림은 계속해서 커피 농장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 열대림의 절반 정도가 이미 사라졌고, 지금도 매년 한반도 면적 크기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다. 커피는 연평균 기온 15~24°C 재배지에서 자란다. 고품종 커피일수록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재배지의 고도는 높아진다. 문제는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애써 일군 농장을 두고 또 다른 농장을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커피 애호가들은 최근 가장 높은 고도에서 생산되는 아라비카 품종을 뛰어넘어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대로라면 30년 뒤 열대우림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요. 즉 생물의 종과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거죠. 이렇게 적도가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 못하면 평균 지표면 온도 1.5°C를 넘어 2°C가 상승할 거고, 그러면 중남미 커피 생산량은 최대 88%까지 감소할 거예요. 커피를 마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죠.” 현생 인류가 탄생한 지 20만 년 이래, 산업혁명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지구에게 그 어느 때보다 유해했다. 평균 기온 그래프의 변화폭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기술과 문명이 발전할수록 기온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전문가들은 그래프의 기울기가 점점 더 급해질 것이라 예측한다. 2016년에 발효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은 205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이 1.5°C를 넘지 않도록 합의한 국제 사회 간의 조약이다. 왜 1.5°C이냐,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산호와 여름의 북극 해빙, 아마존 열대우림과 시베리아 동토가 사라지는 것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는 온도가 딱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한데 2020년 기준으로 지구 평균 기온은 벌써 1°C 상승했다. 한계에 다다르기까지 겨우 0.5°C밖에 남지 않았다. 기후 학자들은 총 2°C가 상승했을때 지구 생명이 겪을 비극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며 비관한다.

기후변화학회의 일원이기도 한 공우석 교수는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각국을 돌며 생물 다양성을 연구, 발표하고 사람들에게 귀감을 준다. 북한 생물 다양성을 위해 북한연구학회원 활동도 겸하고 있는데, 국제회의에서 만난 북한 산림청 관계자에게 우리 풍토에 맞는 나무 심기를 제안한 적도 있다. 소나무를 지키고 우리 숲을 지키기 위해 아이와 청소년, 어른들에게 틈이 날 때마다 우리 나무가 가진 소중한 이야기도 전한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고 봅니다. 자기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때는 그만큼 의지와 소명의식을 가지고 했을 텐데, 본인이 지키지 않으면 언행일치가 아니잖아요. 나는 예외로 하고 나에게 인자함을 베풀면 세상이 안 바뀐다고 봐요.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바꿀 수 있는 사람부터 변화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먼저 바뀌라고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면 부당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먼저 아는 만큼 한번 실천해보자, 나 먼저 바꿔보자 결심하게 됐습니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들

끊은 것은 커피만이 아니다. 공우석 교수는 커피를 끊은 그날 이후 자신의 일상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변기 물을 내리고 휴대폰을 보고 차를 마실 물을 끓인다.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샴푸와 린스를 사용하며 더운 물에 샤워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것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형성한 하나의 패턴이었고, 하나같이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오염을 일으켰다.

공우석 교수는 두 번째로 샴푸를 끊었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답사를 다녀오지 않는 이상 비누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출퇴근 때 사용하던 자동차는 이제 거의 몰 일이 없고 대신 대중교통으로 다닌다. 답사 차 지방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6층 연구실을 오르내릴 때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2년 전 동생이 쓰던 에어컨을 받았지만 틀어본 일이 거의 없다. 텔레비전은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던 즈음 아내와 합의 하에 없앴다.

“물론 능률과 효율은 떨어질 수 있죠. 대신 느리게 걸으면 더 많이 볼 수 있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어요.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게 습관이 된 덕분에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1989년도에 영국 유학 다녀오며 산 이 양복 재킷을 여전히 입을 수 있습니다.”

식생활도 바뀌었다. 십여 년 전 고기를 안 먹는 생활을 하다가 포기한 후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생식을 시도하다가 현재는 가끔 해산물 정도만 먹는 페스코테리언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각종 유행병으로 살처분되는 애꿎은 동물과 기후변화 때문이다. “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콩 20kg이 들어요. 그 한 자루면 스무 명이 먹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스무 명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걸 한 사람이 먹어버리면 어디선가 그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숲을 밀어내고 또 경작지를 만들어야 해요. 어려운 나라는 굶게 되죠. 내가 사는 동네만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길게, 더 멀리 봐야 해요.”

공우석 교수는 이런 생각들을 학생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양 과목으로 ‘위기의 생태계와 미래’를, 전공과목으로는 ‘환경지리’를 개설했다. 교양 과목에서는 한 학기 동안 지금까지 해왔던 세 가지 이상의 습관을 버리고 실천해 보고하는 것이 과제다. 보통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하지만 커피와 담배, 고기 끊기, 걷기, 천 생리대 사용하기 등 나름의 실천들을 보고한다. 무역학 전공인 한 학생은 한 달 동안 특정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을 다니면서 나오는 쓰레기의 원인과 처리 실태를 조사해 그 회사에 보고서를 보내기도 했다.

“저는 이런 실천을 해보는 과정이 학생들의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기업이나 조직에서 관행적으로 해왔던 잘못을 큰 부담 없이 바꾸게 할 수도 있고, 그래야 인정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기업이 바뀐다면 소비자는 감동을 얻고 기업은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그는 이처럼 미래 세대가 바뀌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아이들마저 식탁 위에 고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먹지 않고,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틀어달라며 아우성치는 일이 빈번하다. 공우석 교수는 모든 개개인이 일상의 편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마치 궤도를 이탈하는 행성처럼.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야 일그러진 세상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노 임팩트 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뉴욕에 사는 콜린이라는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가 1년간 지구에 무해한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재기발랄한 다큐멘터리다. 아내와 어린 딸과 사는 콜린은 냉장고와 세탁기 없이도 살아보고 불도 거의 켜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도 벌레를 이용해 퇴비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대중교통은 물론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않는다. 2010년 우리나라에 이 영화가 개봉해 관람했을 당시, 나는 한껏 경도됐다. 그리고는 사소한 몇 가지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곧 실패했고 지구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아는 지금도 실천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2010년에 펴낸 어느 환경 책에서는 ‘인간이 지금처럼 삶을 유지하려면 지구 1.4개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는데, 2020년 발간된 책에서는 어느새 ‘1.7개가 필요하다’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지구 3.3개가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이는 그의 말은 실감조차 되지 않았다.


“코로나19를 대부분 재앙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응당 큰 벌을 받아야 하는데, 작은 매로 벌주고 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공 교수의 책 《생태: 지구와 공생하는 사람》에 따르면 지구상에 건설된 도로의 길이는 3,600만㎢다. 이로 인해 지표면은 60만 개 조각으로 쪼개졌고 그 결과 1㎢ 이하인 땅이 지표면의 절반 이상이 됐다. 생물이 위협을 덜 느끼고 살 수 있는 면적 100㎢이상의 땅은 지표면 전체 중에 7%에 불과하다. 그는 “커피와 코로나19가 과연 서로 관계가 없을까요?” 하고 되물었다. 땅이 커피 경작지로 파헤쳐지고 도시화로 잘게 쪼개지는 지금, 동물이 서식할 곳은 사라지고 있다. 바이러스가 어느 동물에게서 나왔든 그것은 생태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결과다.

“그들도 원래 서식지에서 살고 싶지 않겠어요? 인간을 두려워할 텐데 무슨 볼일이 있다고 인간에게 적극적으로 덤벼들겠어요. 땅이 파편화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예요. 산을 뚫어 도로를 만들었으니 우리야 편하게 다닐 수 있죠. 하지만 북유럽 같은 곳은 구불구불 다니기 불편해도 최대한 아연에 피해가 가지 않게 건설해요. 이런 생태적인 감각, 지구에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때입니다.”

공우석 교수는 LNT의 원칙을 지키는 데 참여한다. ‘Leave No Trace’ 즉, ‘흔적을 남기지 않기’라는 의미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미국 국립공원 환경 단체가 주도하는 이 운동은 장소와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지침을 제시한다.

“식물을 발견하면 예쁘게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이 찍지 못하게 잘라 없애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건 잘못된 행동이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며 연구하는 것이 내 주된 실천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연구자로, 도시 생활자로 살아오면서 소신을 실천했다. 누군가에게 주장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는데도 유난이라며 따가운 시선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오히려 해왔던 실천을 지켜나가며 그것에 더해 하나하나 늘려가는 것이 목표다. 오래 전 사후 장기 기증을 신청한 것도, 어떠한 묘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자는 결심을 한 것도 마지막까지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소신이다.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뀔 겁니다.”

어쩌면 그것이 살아 있는 한 완벽한 제로가 될 수 없는 우리가 가장 우아하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따뜻한 물로 차를 우려 권하는 그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 전 민 진
지구와사람 전 사무차장으로 본업은 콘텐츠 기획자다. 지구와사람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 《줄이는 삶을 시작했습니다》(2021, 비타북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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