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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생명 지향을 위하여 - 강금실 대표 인터뷰
  • 202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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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생명지향을 위하여

 

지구그리고 사람’. 너무나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두 대명사가 만나 지식공동체 지구와사람을 이뤘다. 재단이 만들어진 지 벌써 만 6. 회원들은 아직도 지구와환경’, ‘지구와사람들’, ‘지구와사랑등 각양각색으로 이곳을 지칭한다. 하지만 강금실 대표는 전 법무부장관, 법조인, 전 정치인으로 본인을 기억하기보다 지구와사람 대표로 불리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가 이 모호한 이름의 공동체에서 6년을 공부해 지구를 위한 변론이라는 신작을 냈다. 왜 이 다소 불분명한 공동체를 만들고 책을 냈는지, 지켜본 자로서 잠시 변론의 시간을 갖는다. 강금실 대표를 인터뷰했다.

 

 

생각의 끝에서 만난 지구

나는 생각하는 게 취미예요.”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강금실 대표의 말이다. 2006, 그가 서울시장 후보직을 맡았던 때였다. 유난히 생각 많고 어설픈 대학생이었던 나는 취미가 무엇이냐는 인사치레 질문에 그렇게 답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왠지 훅, 위로를 받았는데 그 단순한 말이 꼭 자신의 생각을 지키며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를 다시 진하게 만나기 시작한 건, 2015년 강금실 대표가 문을 연 지구와사람이라는 지식공동체에 초대를 받은 이후다. 오랜만에 무척 반가운 초대였지만 의아했다. 갑자기, ‘지구그리고 사람이라니?!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6년을 함께한 지금, 이제는 그의 자유로운 생각 유영이 왜 결국 지구, 그리고 생명에 가 닿았는지를 안다. 언제나 정치인이길 기대하는 주변의 시선은 여전하지만, 곁에서 보기에 그는 생태문명으로의 방향성을 갖고 지식을 엮어나가는 너무도 성실한 학생이자, 현상을 명징하게 꿰뚫어보는 어른 그 자체다. 생각이 취미라는 그의 말은 진짜였고, 6년간의 배움과 생각은 20218월 출간한 책 지구를 위한 변론을 통해 집대성됐다.

 

다양성을 실험하는 장

“20대부터 판사 생활을 하고, 40대에 법무부장관까지 하면서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을 했죠. 그러다보니 윤리나 가치, 전체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우리가 합의한 규범이나 법만으로는 인간 문제나 존재의 해답이 안 나온다는 느낌으로 더 밑바닥까지 들어가고 싶었는데 결국 우주와 지구,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와 만날 수밖에 없더군요.”

강금실 대표는 2012,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대과학에서 밝힌 우주와 지구의 진화론을 결합한 문명사를 공부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생태대(Ecozoic Era), 즉 산업문명을 넘어 인간 존재만이 아닌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사는 연대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론을 펼친 생태사상가 토머스 베리 신부의 우주영성 스토리 역시 강금실 대표를 매료시켰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자연이 각각 생명 주체로서 친교를 나눠야 한다는 생태사상은 평소 다양성을 중요시했던 그에게 제 옷을 입은 듯 너무 자연스럽고 친숙했다.

지금 세상은 셀프(self)’라는 개념을 인간에게만 한정하지만 에콜로지(ecology)는 그렇지 않아요. 개념 안에 인간만이 아니고 비인간도 들어오는 거죠. 그게 시야를 확 틔웠어요. 너무 재밌었죠. 일반적으로 에콜로지를 말하면 환경 문제를 연상하는데, 사실 존재의 문제거든요.”

얼핏 에콜로지가 존재의 문제라는 명제는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구와사람이라는 커뮤니티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법조인과 학자, 사회인과 학생, 어린이와 청소년, 시인을 비롯한 예술인이 한 데 어우러져 생명을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곳. 각자가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만나 친교를 나눈다. 처음에는 생경하지만 금세 깊숙이 젖어들고야 만다.

솔직히 말하면 지구와사람은 내가 아는 강금실 대표의 모습 그 자체다. 법조인이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매혹되며, 높고 반짝이는 것보다는 소소한 아름다움에 훨씬 마음을 빼앗긴다. 그런 그에게 지구상 모든 생명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는 에콜로지 철학이 다가왔다. 지구와사람은 이를 실험하는 장으로서 그간 생명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모든 생명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을 현실화하는 것에서부터 다양성 가득한 생태대로의 이행을 꿈꾼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느슨한 공동체

가끔 답답해하는 목소리도 만난다. 우리에게 당장 닥친 위기 상황이 급박하니 당장 변화를 위해 싸우자는 제안이다. 초기에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지구가 맞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한 이후, 이곳에서 생명을 공부하고 시를 쓰기보다는 행동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옆에서 몇 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생각이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와사람에 속한 많은 이들이 에콜로지 철학과 지구법을 중심으로 자신의 업을 결합해 다양한 책을 집필하거나 강연, 예술 활동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얼핏 느려 보이지만 성숙을 겪은 이후 생각의 파급력은 더 넓고 깊이 있다는 증거다.

지금 상황이 급박하고 우리는 위기 속에 있지만, 속도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봐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본이나 기술 말고, 지구 전체의 존재를 아우를 수 있는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을 느릿한 시간도 필요한 거죠. 우리가 놓치고 달려온 게 저는 다양성인 것 같아요. 이 큰 궤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도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하죠. 그래야 숨어 있던 존재들, 여성, 젠더, 식물, 동물이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봐요. 이게 바로 전체중심주의의 개념이죠. 이게 우리의 위기를 극복할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다양성을 모두 포함하기에 지구와사람의 움직임은 뭐라고 하나로 단정해 소개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비주류인 환경 분야에서도 더 비주류에 가깝다. 하지만 운동하는 단체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러한 천천한 움직임을 하는 곳도 존재할 권리는 있다. 오히려 이러한 모델의 커뮤니티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게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내 생각이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느슨한 공동체. 그게 지구와사람이에요. 하나는 자신해요. 이곳이 꽤나 유니크한 커뮤니티라는 것. 이걸 어떻게 모델링할지는 고민입니다만, 지금 있는 삼청동 본부를 두고 앞으로 지역과 해외에 브랜치를 운영하는 것도 꿈이죠.”

 

강금실의 권리

그는 책에서 지구법을 논하며 꽃에는 꽃의 권리가, 강에는 강의 권리가 있다고 적고 있다. 문득, 그러면 강금실에게는 어떠한 권리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강금실은 강금실답게 살 권리가 있죠. 법무부장관까지 했던 사람이 어떻게 자기 인생 못 살았다는 소리를 하지? 사람들은 이야기하겠지만 내 앞에 던져진 관계와 과제 속에서 나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정치를 안 할 권리와 할 권리, 그리고 내 인생을 찾을 권리가 내게 있죠. 나는 지금 이곳을 통해 성장하는 중이고, 내 인생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지난 6년간 지구와사람을 일군 게 내가 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마치 나를 둘러싼 어떤 큰 힘이 나를 움직이는 것 같이... 아마 내게 주어진 과업이겠지요.”

의도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은 정신에서 비롯된다. 만 천년이 넘도록 기후 안정기를 이어온 홀로세(Holocene)에 인간은 문명을 이뤘다. 그 지질시대를 스스로 끝내고 기후환경에 위기를 부를 정도로 편리와 번영을 추구한 인간의 과오를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지질시대로 칭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개념화만으로는 간단히 바뀔 리 없다. 진정 위기를 끝내는 방법은 우리가 미처 닿지 못했던 지구와 생명의 이야기, 그 맥락과 상호 연결성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되살리는 방향일 것이다. 그 중간 지점에서 모든 생명이 친교하는 새로운 연대기를 꿈꾸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지구와사람의 역할이 아닐까. 강금실 대표의 사색 끝에 기다리던 사명은 참으로 근사했다.

 

글 전민진

지구와사람 전 사무차장으로 본업은 콘텐츠 기획자다. 지구와사람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 줄이는 삶을 시작했습니다(2021, 비타북스)를 썼다. 

[월관환경] 1월호 "지구와사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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