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사람 2015 워크숍 기조 강연]
1985년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때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 한국은 정의구현 운동이 강했고 천주교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의구현 운동도 좋지만 환경 운동도 같이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지금 상황이 어떤데 환경 이야기냐’는 반응이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사회 운동과 연계하기 위해 뜻이 맞는 분들과(스님도 계셨습니다) “자연의 친구들”을 만들어 활동을 했고, 1990년에는 천주교회에서도 환경 운동을 포괄하는 지침이 나왔습니다.
몇 년간 활동을 했지만 궁극적으로 왜 해야 하는지, 특히 신앙인들이 왜 환경 운동을 해야 하는지, 환경 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5년에 토마스 베리의 사상을 소개하는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토마스 베리의 전망이라면 환경 운동의 전망이나 대책이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공부를 하러 갈 기회가 생겼을 때 토마스 베리를 찾아갔습니다. (당시에 이미 연세가 80이 넘으셨고, 공부를 지도해 주신 분은 토마스 베리가 소개해 준 제자였습니다.)
토마스 베리의 생태문명사상
생태문명을 이야기하기 전에, 인류는 산업문명을 지나왔습니다. 한국도 1960년대부터 새마을 운동, 나무심기 운동, 경제개발계획으로 경공업, 중공업, 전자산업 발전까지 산업 문명의 막차를 탄 국가입니다. 한국은 50년, 세계적으로는 200년 정도가 산업 문명이 발흥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산업 문명에는 두 가지 후유증이 있습니다. 하나는 빈부 격차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계 파괴입니다. 1960년대에 과학적으로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사람으로 레이첼 카슨이 있고 문명사적으로 생태 문제를 제기한 사람으로 린 화이트가 있습니다. 린 화이트는 환경 위기를 ecologic crisis라고 표현했습니다.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구 언어에는 인간과 자연을 같이 표현하는 말이 없어서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ecology를 형용사로 만들어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ecological이라는 형용사가 있지만요.) 생태 문제와 관련한 최근 이슈로는 기후 변화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2008년에 〈6도의 악몽〉이라는 책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토마스 베리는 산업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양과 서양이 협력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 제도에서는 동양과 서양을 다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 종교와 과학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역시 종교도 알고 과학도 알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것들의 종합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토마스 베리 이야기가 힘이 있는 이유는 동서양을 종합하고 종교와 과학을 종합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설명합니다. 토마스 베리는 사제이긴 하지만 신학자라기보다는 문명사학자입니다. 서양뿐 아니라 중국, 인도, 미국 원주민 등의 문명사를 연구해서 지금 우리를 진단하고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를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토마스 베리가 내린 결론은 현재 우리는 신생대가 끝나가는 시점에 있으며, 앞으로는 생태대Ecozoic Era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
인류 문명은 부족 시대, 고대문명 시대, 산업 물질문명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최첨단 기술을 발달시켜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쪽이 있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로운 '공존의 관계'로 만들자는 쪽이 있습니다. 후자가 생태대를 지향하는 쪽입니다.
19-20세기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충돌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첨단 과학 문명과 생태주의가 부딪치는 시기입니다. 인간도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도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의 기술과 인간의 기술 두 가지 중에서 인간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보면 첨단 과학 문명이고, 인간 기술이 있을 수 있지만 지구 기술이 더 중요하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보는 것이 생태 문명입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지구족은 첨단과학문명을,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은 생태문명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죠. 영화는 이 둘의 갈등을 보여 줍니다. (생태문명과 첨단과학문명을 반드시 양자 택일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제레미 리프킨 같은 사람은 산업문명을 가지고 가되 기본 원리는 생태 문명으로 두는, 생태산업문명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주어진 과제가 있습니다. 인류는 지구를 떠나서는 살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를 생각할 때 인류가 살 길은 생태문명입니다. 생태문명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 시대가 수행해야 할 '위대한 과업 Great Work'입니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문명의 네 가지 축인 정치, 경제, 교육, 종교의 기본 원리가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변화해야 합니다.
- 생태문명의 정치: 인간과 생태계 전체를 생각하는 정치입니다. 다른 생물종이 살 권리도 인정해야 합니다. 현행 법체제는 인간 중심의 민주주의인데 여기에서 생명주의로 가야 합니다. (democracy에서 bio-cracy로, 국가들의 연합United Nations(UN)에서 종들의 연합 United Species로)
- 생태문명의 경제: 개인과 국가 중심의 경제에서 지구 중심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구 경제학이 중요합니다. 국가 경제도 지구 경제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초국가 기업이 지니는 사회적 윤리와 생태적 책임이 지구 생명의 앞날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읽어볼 책으로 강수돌 교수님의 〈여유롭게 살 권리〉를 추천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분석과 대안을 제시합니다.)
- 생태문명의 교육: 파편화된 교육에서 통합적 교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육은 미래 세대를 준비시키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은 교육 기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길어졌지만 전문화specialized되어 있고, 오늘날의 전문화는 분절화fragmated입니다. '박사'에서 '박'은 원래 '넓을 박'인데 지금 박사들은 자기 주제 이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려면 전체 판을 알아야 합니다. '융합'을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일부 과학 분야들끼리의 범주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과학과 인문사회가 융합하는 것이나 과학과 영성이 융합하는 것은 아직 제대로 시도되지도 못했습니다. 흥미로운 시도의 사례로 California Institute for Integral Studies가 있습니다. 대학원 과정인데 학생들은 학부 때 전공한 것과 다른 분야를 공부해야 합니다. 또 수리물리학자였다가 이제는 스스로를 '철학적 우주론자philisophical cosmologist'로 칭하는 브라이언 스윔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주의 아름다움을 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수리물리학을 공부하고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이 그 방정식을 가지고 우주와 지구를 파괴하는 데에 사용한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리물리학 전공 학생들의 반 이상이 무기, 방산 분야로 진출하거든요. 그래서 토마스 베리를 만나서 과학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우주 이야기〉는 토마스 베리와 브라이언 스윔의 공저입니다.
- 생태문명의 종교: 종교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동양 종교이건 서양 종교이건 좀 더 지구를 생각하는, 지구를 보호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서양 종교는 초월, 구원 중심의 종교인데,구원 중심에서 창조 중심으로 중점을 옮기고 원죄(original sin)에만 강조점을 두는 것에서 원복(original blessing)의 의미를 포괄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구원이 중심이 되면 '이 세계'가 아니라 '저 차원'이 더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고, 그러면 이 차원은 소홀해집니다. 그게 아니라 '이 차원'이 중요하고 축복받은 곳이며 나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임을 종교가 강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갈 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선포하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원죄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원죄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original blessing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큰 주제가 original blessing인데 교회가 오랫동안 이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물론 원죄 개념이 고통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하는 등 유의미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original blessing의 개념을 놓치면 안 됩니다.
실현 가능한가?
토마스 베리는 강연을 하면 반드시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토마스 베리의 답이 “꿈이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Dream Drives Action”입니다. 어느 문명이건 물질적인 형태 안에 정신적인 비전이 있습니다.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갈 때도 중세의 꿈이 있었습니다. 서양문명사에서 중세의 꿈을 밝힌 책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입니다. 로마 제국 멸망을 보면서 다음 문명의 형태를 꿈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국론〉으로 중세 1000년 문명이 일궈졌습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갈 때도 근대의 꿈이 있었습니다. 이런 꿈이 있으면 그것이 행동action을 추동합니다. 토마스 베리는 행동 계획action plan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꿈을 바꿔야 합니다. 생태문명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이어야 합니다. 행동 계획부터 짜면 금방 지치지만, 꿈이면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