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포럼 지구와사람은
포럼의 비전과 미션을 수행하고 보급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저서 출판, 번역 사업을 전개합니다.
지구법학회 기본 교재인 <야생의 법 – 지구법 선언> 출간을 시작으로 청년 교육 교재,
토마스 베리 워크북과 <지구공동체> 번역서를 기획, 출간할 예정입니다.
언더바 책 소개
야생의 지구법 선언 법 책 이미지 야생의 법 – 지구법 선언 코막 컬리넌 저, 박태현 번역

2016년 포럼 지구와사람이 기획하고 로도스출판사가 펴낸 첫 번역서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출간했다. 환경법 전문 변호사이자 저술가인 코막 컬리넌(Cormac Cullinan)이 쓴 이 책은 생태 환경 분야에 현대 법학이 내놓는 매우 도전적이고, 야심찬 이론적 기획을 담고 있다. 기존 법학의 이론적 체계가 지구의 심각한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생태사상가인 토마스 베리가 제창한 지구법 개념을 바탕으로 기존 법학의 패러다임을 뒤집고 인간과 자연의 권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법학의 새로운 틀을 제안한다. 지구법학회 회장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출판 행사
<야생의 법 - 지구법 선언> 출판 기념회 토론 영상과 녹취록
  • 2016-07-05
  • 840






[강금실] 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강금실입니다. 저희 포럼이 작년 10월에 시작되었는데, 그 전에 이 책의 원서 영어판을 지구법학회 모임에서 같이 읽었습니다. 지구법이라는 주제가 너무 무겁다 보니 읽을 때도 허우적거렸는데, 번역본을 보면서도 이 어렵고 골치 아픈 주제를 누가 읽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을 보면서 결국 우리가 사는 지구를 좀 더 잘 보존하고 싶은 그런 열망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에 이 책이 해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입니다. 그래서 오늘 노주코 글로리아 밤 남아프리카 대사도 축하를 해 주기 위해 곧 오실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소를 후원해주신 유니베라와 이 행사를 후원해 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인사말을 마칩니다. 


1부 “야생의 법”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박태현 – 지구법학회 회장/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부에서 제가 야생의 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오늘 모신 세 분과 플로어에서 야생의 법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야생의 법은 한마디로 ‘컨텍스트(context)’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가 아닌 ‘컨텍스트’. 지구 나아가 우주라는 컨텍스트 말이죠. 야생의 법은 그러한 컨텍스트를 깔고 지구 거버넌스를, 그리고 지구 거버번스의 이론적·철학적 기초로서 지구법학을 말하는데, 이러한 지구법학의 안내로 현행 거버넌스인 인간법학을 위대한 법학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컨텍스트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환경법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소송도 하고 법과 정책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환경법이 공해법에서 시작해 40년 정도 흐르면서 지금의 환경법 체계로 발전했습니다. 다른 법과 비교해도 체계성에서 그리 뒤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환경이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답은 회의적입니다. 체계적인 법과 그렇지 못한 현실, 이런 불일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학자들은 이에 대해 여전히 개발 중심의 정책이 문제라고 답할 것입니다. 예컨대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습지보호법이라는 법을 만들었고, 이 법에 따라 낙동강 하구 을숙도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이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명지대교의 건설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명지대교가 습지보호구역을 통과함에도 계획 승인이 이루어졌는데, 명지대교 건설 공사를 중지해 달라는 청구를 법원은 기각했습니다. 습지를 보호하고자 습지보호법을 만들었는데, 습지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건설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습지보호법이라는 ‘텍스트’가 있지만, 환경보호보다는 교통 편의, 그리고 교통 편의를 통한 지역경제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개발중심의 ‘컨텍스트’ 앞에서 ‘텍스트’는 무력한 것이죠.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계자연헌장이 있더라도 인간 중심의 컨텍스트에서는 그게 성공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인간 중심의 컨텍스트를 대체하는 또 다른 컨텍스트로, 또는 그러한 컨텍스트의 생성과 발전을 안내할 지도원리로 지구법학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인간과 다른 종들 간의 권리가 서로 존중되는 지구 정의, 그런 지구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지구 거버넌스, 그 이론적 토대가 지구법학입니다. 지구법학은 그 핵심으로 ‘위대한 법’을 이야기하고 이를 전제로 권리 개념을 새롭게 이해하자고 제안합니다. 우주적 공진화 과정에서 자기의 역할을 수행할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자격으로서의 권리로서 Earth Rights, 즉 지구권을 말합니다. 우주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하나의 종에 불과하고, 다른 종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자신을 형성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만이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우주와 지구라는 컨텍스트에서 본다면 맞지 않다는 것이지요. 지구법학의 지도를 받아 인간법학을 위대한 법학에 맞추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입니다.  


그럼 제 발제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오늘 모신 세 분에게 제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박태현 – 고철환 교수에게]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저서 <최초의 3분>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우주는 점점 더 무의미해진다.” 이 문장에 담긴 뜻을 묻는 질문에 와이버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우리의 삶에 객관적 의미를 부여해주는 무언가를 우리는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자연법칙 속에는 우주에서 우리의 자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아무리 봐도 없거든요……하지만 우리는 이런 의미를 우리의 삶에 스스로 부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마스 베리는 우주가 우리 삶의 궁극적인 준거가 된다는 입장입니다. 교수님은 대학에서 30년 이상 해양생태학을 가르치는 한편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시민사회단체의 대표 등으로 활동하셨는데요, 교수님의 학문 성격과 내용이 인간의 삶의 의미, 또 자연 세계에서 인간의 위치 이런 류의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을 것 같은데 얘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고철환 – 서울대 명예교수]  인사드리겠습니다. 방금 소개받은 고철환입니다. 오늘 야생의 법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런 귀중한 자리에 초대를 받게 된 것이 저로서는 큰 영광입니다. 더구나 평소에 마음속으로 세상에 이렇게 대단한 분도 계시는구나 생각해왔던 강금실 대표님을 오늘 직접 뵐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야생의 책을 번역하신 오늘의 주인공, 박태현 교수님은 제가 새만금반대운동을 하던 때부터 같이 활동해 오면서 삶의 진지함과 성실함을 제게 일깨우셨던 분입니다. 포럼 지구와사람을 알게 된 것도 저에게는 큰 행운입니다. 

박교수님의 질문은 우주에서, 지구에서, 또는 자연에서 우리 인간의 위치, 인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주학자는 우주를 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나 인간 삶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달리 생태신학자는 우주에서 인간 삶의 준거 틀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생태학자인 당신은 그동안 자연관찰을 해보니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 인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나는 것입니다.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의 ‘우주가 인간 삶의 준거 틀이다’라는 말은 인간 ‘가치체계의 시원’ 또는 ‘가치체계의 태초’를 찾으면서 우주를 상정한 것이 아닐까 상상했습니다. 현재의 모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다보면 이는 우주일 수밖에 없고, 그것도 우주의 최초 3분을 생각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존재의 원천인 우주를 가치체계에 넣으면 대상을 모두 포괄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가치체계의 기원을 우주에 있다고 말하면 시공간을 포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토마스 베리를 잘 읽지 않아서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존재의 인정, 존재권리의 인정 등을 포용적, 포괄적으로 보는 시도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존재는 원래 철학 용어일 터인데 제가 해석하는 존재는 ‘야생의 법’에서 말하는 생물, 무생물, 인간 등의 지구 구성원에 국한시켰습니다. 

우선은 지구 구성원인 모든 사물의 존재를 시공간에 펼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물의 존재를 시공간에 펼치면 시간은 태초에서 지금까지, 공간은 우주에서 지구, 심지어 오늘의 이 강당까지 전개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대상은 사물인데 사물을 포괄하려면 모든 사물이 됩니다. 우주 공간, 우주의 별, 태양계, 지구, 지구의 자연, 동식물, 인간 모두를 포괄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물을 포괄해서 모든 사물이 중요하다, 또는 권리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토마스 베리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또한 왜 중요하고 권리를 가지는지는 존재뿐만이 아니라 기능에서도 찾았습니다. 존재는 있는 것 자체이고 존재하면 기능도 당연히 있는 것인데 이 둘을 나누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강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존재는 기능을 갖기 때문에 중요하고 그래서 쓸모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기능을 가지며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하자는 논리입니다. 자연과 인간에서 자연에 권리가 있는가로 다투는데 포괄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에 권리가 있고 인간 중심적으로 보면 자연은 객체라고 여겨집니다. 야생의 법은 저에게 어려운 문제를 던져 놓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문제에 좀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주, 지구,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가 어떠한가에 대한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우주라기보다는 지구 또는 자연에서의 인간의 위치 정도를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인간의 위치는 특별하다고 여겨집니다. 유명 물리학자가 인간의 위치를 우주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제 느낌으로는 지구에서,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를 잘 관찰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자연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이 파괴된 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공부하고 운동하던 새만금 현장에서 인간존재가 각인되어 나타나는 것이지요. 반대로 아주 잘 관리되는 자연에서도 인간 흔적은 드러납니다. 자연은 인간이 하기에 따라서 보호받기도 착취당하기도 합니다. 자연은 권리를 가진다고 하지만 그 권리는 인간이 대변하지 않으면 구현될 수 없는 권리이므로 결국 자연의 권리는 인간인식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호혜적이지만, 자연-인간 관계를 건강하게 하는 책무는 인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자연-인간의 관계를 사회-생태체계라고 부르는데 상호 호혜적 관계를 강조하는 술어로 여겨집니다.

인간책무를 지구차원으로 확대하려면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기후변화 얘기를 끌어드려야만 할 것입니다. 지구환경의 거대 변화는 인간이 감지하지 못했던 사실인데 지금은 지구인 모두가 이 문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논의의 핵심은 ‘지구의 수용력’을 계산했고 미래 지구를 그 수용력 한계 내에서 유지하자고 전 지구국가가 합의했고, 지구 수용력 한계를 형평성 원칙 아래에서 유지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형평성에 관심을 가지는데 해결하기 어려운 태생적 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간애는 부의 격차가 있고 그 원인이 되는 기술과 재정의 격차가 있어서 기후변화 대처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의 국가간 격차는 더 벌어지고 경제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입니다. 오늘 출간하는 ‘야생의 법’에서 강조한 것은 지구거버넌스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변화일 것입니다. 물론 기후변화는 야생의 법에서 말하는 인간거버넌스 또는 지구-인간 거버넌스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야생의 법은 지구와 우주를 포함하는 체계가 대상인데 그래도 기후변화와 일맥 상통한다고 여겨집니다.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주에서 기원을 찾고 인간 이외의 우주, 지구, 자연까지를 포괄하는 권리체계 내지 법체계, 지구법학, 야생의 법은 인간 인식의 지평을 무한대로 확장하였습니다. 지구를 살리자는 국제 거버넌스는 지구헌장, 자연헌장, 지속가능발전 등 선언 형태로 유엔의 주도 하에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들 선언은 법체계 전 단계이지만, 그래서 구속력이 떨어지는 연성법이라고 하지만 법률로 구체화하기 이전에 가치체계를 정립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또한 선언을 넘어서서 구속력을 가지는 체제로 발전한 기후변화와 생물종다양성 등의 협약체제도 있습니다. 결국 야생의 법을 어떻게 이행하는가가 문제인데 지구헌장 이니시어티브, 가이아, 기타 국제단체의 활동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저의 전공과 관련한 학술단체인 미국생태학회는 ‘지구에 대한 책무’ Earth Stewardship, 라는 프로그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구책무는 생태계 회복과 인간웰빙의 증진을 목표로 지역-지구 차원에서 사회-생태체계를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지역-지구 차원의 과학적 이해, 지구책무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당사자 간 폭넓은 이해, 생태계회복과 인간웰빙을 증진하는 전략 수립 등을 제안하였습니다. 

포럼 지구와사람은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구법 강좌, 토마스베리 아카데미, 경영자 아카데미, 청년아카데미, 출판사업, 생명문화 등의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계층을 목표로 사업이 전개되고 있음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구를 살리는 길, 자연을 살리는 길, 생태계를 살리는 길은 결국 우리 인간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의 이 출판기념회도 인간의 생각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의 하나이고 그래서 지구생태계의 회복에 크게 공헌한다고 믿습니다. 오늘의 출판기념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태현 – 송기원 교수에게] 독일의 이론생물학자 안드레아스 베버(Andreas Weber)는 전통적으로 연구되어 온 생명과학(science of life)이 더 이상 생명체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 방법론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이론체계를 생명시학(biopoetics)이라고 부르는데, 이 체계에서는 모든 유기체는 “의미를 만들어 내는” 생명체로, 삶은 물리적 주체가 주변 환경과 다른 생물과 상호작용해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내는 진화의 과정으로 인식합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시학이 “의미를 생산하고 공급하고 그 결과 인간의 의미 있는 상상력의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주체들의 상호작용으로서 생물학에 대한 새로운 전체론적 설명을 제공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토마스 베리도 우주론, 고고생물학, 진화생물학 등 과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과 문명을 인도할 우주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베버의 주장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자연과학은 사실학문, 인문과학은 의미/가치학문이라는 이분법이 여전히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합니다. 교수님은 20년간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가르치셨는데 자연과학이 우리네 삶과 사회(질서, 윤리), 문화(문명) 등등에 어떤 통찰(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송기원 – 생태대연구회 회장/연세대학교 교수] 질문이 매우 어렵습니다만, 안드레아스 베버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진화는 아닙니다. 우리가 네트워크로 공생하는 관계 맺기를 통해서 진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생명과학은 전통이 없는 학문입니다. 겨우 20세기에서야 시작이 되었는데요, 근대에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온 것, 즉 환원적으로 쪼개가면서 이야기하는 과학이 ‘전통적’ 과학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과학이 우리의 삶에 어떤 가치를 주느냐, 이 질문에 대해 제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연세대학교 논술문제 출제를 갔는데, 거기서 자연과학 교수는 저밖에 없고 모두 인문사회학 계열 교수님이었습니다. 그중 어떤 교수님이 저에게 “생명체는 자기가 죽을 때를 압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냐면, 생명체가 자기 죽을 때를 모르면 시체가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을 보면 생명체는 자기가 죽을 때를 아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자기가 죽을 때를 모르는가, 그런 질문을 받고 저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개체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요. 세포가 분화되면서 기능이 다양화되고, 서로 어셈블리되어 자기조직화되어 그 개체의 어떤 기관이 만들어 지고, 기관과 세포가 서로 상호작용, 친교를 하면서 생명체를 유지합니다. 자기분화가 이루어지면서 매우 놀라운 것은 각 세포가 전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는 양보하고, 더 필요할 때는 전체를 위해 죽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명체이지만,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행위논리, 행위방식으로 움직이는가요. 생명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주통찰을 배웁니다.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는데, 교환이 끊기면 생명도 끊깁니다. 그래서 자연과학이 사실과학, 인문과학이 가치학문이라는 것도 이분법적인 낡은 사고에 불과합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다른 점은 대상이 눈에 보이느냐 아니냐에 불과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위대한 법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양에서 ‘도’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결국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이나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태현 – 손익수 대표이사에게] 토마스 베리는 “우리는 이야기들 사이에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서적 태도들을 형성했고 삶의 목적을 제공했으며 행동할 에너지를 주었다. 그것은 고통을 축성했고 지식을 통합했으며 교육을 인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우주 이야기’를 말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이야기의 첫 번째 함의로 “지구의 모든 부분들 특히 그 모든 생명형태들은 계속되는 변화의 상태 속에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로 “인간이 지구와 주체적인 친교 속에 있다는 각성이 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타당성, 가치 여부를 떠나 이러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보는지요. 그것은 어떠한 이야기여야 할까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확산시킬 수 있을까요. 


[손익수 환경일보 대표이사] 저는 지난 10년간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현실을 보면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를 빼고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성장률 2% 정도이지요, 그 말은 환경에 쓸 여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야생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285쪽에 보면 “중앙정부의 환경부석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정된 지역 공통체가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규율하는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하는데, 이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그런데 단서가 있어요. “우리 거버넌스 시스템이 고도로 정교한 수준으로 진화하려면 지역 조건에 적응하고, 또 정말하게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또 절망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는 개인 중심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산업화,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시민화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공동체 정신이 사라졌어요. 결국 공동체 정신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 한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중국 내몽골 쿠르치 사막에서 15년 전부터 한 사람이 나무를 심었다고 해요. 제가 의구심을 가지며 2013년에 처음 가봤는데 정말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가 심은 650만 그루 나무 중에서 500만 그루가 활착했다고 합니다. 그 사막에서는 모래폭풍이 부는데,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세기입니다. 그 곳에서 어떻게 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해 2년 만에 다시 가봤더니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마뱀, 여우, 새가 있어요. 죽은 땅에 생태가 살아나니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겐 성공 스토리가 많이 필요합니다. 저는 ‘원 플러스 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나무 심을 때 이렇게까지 될 줄 예상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믿는 어떤 일을 한 결과에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보태져 이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한중일 청년이 모여 나무를 심습니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옳다고 생각하면 하자, 정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하자,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모임이 나중에 어떤 놀라운 스토리로 발전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박태현] 플로워에서 몇 분 말씀 더 들어보겠습니다.  


[강대인 –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 토마스 베리 신부도 그렇고,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도 그렇고, 그 기저에는 ‘cosmic love’가 있습니다. 법의 뿌리가 사실은 신학입니다. 십계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위 5개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위 5개는 이웃 및 사회와의 관계이지요. 하나님과 사회에 대한 율법이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에서 자연, 지구와의 관계에 대한 구도가 약합니다. 지금 시대에 다시 수정보완을 한다면 자연, 우주와의 관계가 보완돼야 합니다. 

오늘 ‘컨텍스트’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나라 컨텍스트로 보면 작년이 새만금 판결 10년째입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앞으로 15년 내에 한국 일본 중국 해안에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30%가 들어서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야생의 법 저자가 글로벌 담론을 제시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특히 법조계 계신 분들이 한국의 컨텍스트에서 노력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최정인 – 국회 입법연구처 변호사]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저자의 새로운 시각입니다. 법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이해관계 및 권리관계에 대해 논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실무 법률가이면서 법을 기존 논리가 아닌 새로운 논리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감명을 받았고 법률가로서 제가 각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존 관점은 공익 대 환경, 이런 구도인데 이 책에서는 인간의 권리 대 지구의 권리라는 구도로 제시하고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또 신비주의나 그런 유사한 관점에 의존하지 않고, 지구법을 제시하면서 시대와 장소에 맞는 커스터마이징을 강조한 점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주장인가도 중요하지만, 누가 이야기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도 있는데, 오늘 이야기를 해 주신 분들이 모두 매력이 넘쳐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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